(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019년 9월 경남 거창군의 한 야산에서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웅크린 자세로 암매장된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에 멍이 가득했고, 아래턱은 세 군데 골절됐으며 뭔가에 찔리고 베인 상처도 있었다.
사인 역시 온몸 곳곳을 구타당해 생긴 다발성 손상이었다. 변사자는 두 달 전 광주에서 가출 신고된 지적장애 3급 A 씨(당시 20·여)였다.
A 씨를 괴롭혀 숨지게 한 일당은 총 3명. 이들은 2020년 12월 9일 열린 항소심 재판부에서 각각 무기징역, 징역 25년,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사건은 201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조폭 출신 B 씨(당시 28)는 아내 C 씨(당시 35)와 교도소 동기 D 씨(30)와 함께 전북 익산의 한 원룸에서 지냈다.
마땅한 벌이가 없던 이들은 24㎡(7평) 규모의 방 2개짜리 원룸을 일종의 '성매매 셰어하우스'로 꾸몄다. 주범 B 씨는 SNS를 통해 가출한 여성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꾀어냈다.
대구에 살던 A 씨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같은 해 6월, A 씨는 조건만남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B 씨의 유혹에 넘어가 익산에 오게 됐다.
B 씨는 A 씨를 익산에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빼앗고 곧바로 성매매시켰다. 이들은 A 씨가 성매매하러 가서 매번 빈손으로 오는 데다 신용불량자라서 대출이 불발되자 '효용 가치가 없어졌다'며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A 씨는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두 달간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에 갇혀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날들을 보냈다.
B 씨 일당의 범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랄해졌다. 이들은 조를 짜서 A 씨를 감시했고, 괴롭힘에 못 견딘 A 씨가 집에 보내달라고 하자 토치로 머리카락에 불을 붙였다.
이외에도 B 씨는 A 씨의 온몸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성추행했다. 또 B 씨 커플은 A 씨 주변에 빙초산을 뿌렸고, D 씨는 낫으로 A 씨의 허벅지와 발등을 찍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A 씨의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게 입에 행주를 물렸다.
이들은 A 씨에게 이틀에 한 번씩 종이컵에 맨밥만 줬고 A 씨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전신에 피멍이 들었고, 몸 곳곳에 진물이 흘러 피부가 변색했다. 지속된 가혹행위와 폭행으로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웠으며 실신과 탈진이 연속됐다.
그러나 B 씨 일당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해당 원룸에서 생일파티를 벌이는 뻔뻔함을 보였다.

8월 18일, A 씨는 원룸에 온 지 2개월 만에 결국 숨을 거뒀다.
이날 빈사 상태에 빠진 A 씨가 옷을 입은 채로 대변을 보자, D 씨는 A 씨 몸에 뜨거운 물을 부은 후 머리채를 잡고 코와 입에 호스를 가까이 대고 물을 뿌렸다. A 씨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을 잃자, 옆에 있던 B 씨는 "연기하는 거니까 더 뿌려라"라고 소리쳤다.
A 씨는 세탁실에 웅크려 고통받다가 외력에 의한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했다. 이들의 고문에 부검 결과 익사 소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B 씨는 친척이 살고 있는 경남 거창군 야산으로 일당들과 함께 가서 A 씨를 암매장했다.
사흘 뒤인 8월 21일부터 거창에 많은 비가 내리자, 이들은 빗물에 흙이 휩쓸려 시신 일부가 외부로 드러날 것을 우려해 그 위에 여러 차례 시멘트를 부어 은폐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사건의 전말은 A 씨가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9월 15일 오전, 원룸에서 함께 생활했던 다른 지적장애 2급 여성 E 씨(32)의 어머니가 "딸이 친구 집에서 납치됐다"며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E 씨의 친구는 "E 씨의 남자 친구가 E 씨를 억지로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CCTV 확인 결과 E 씨의 남자 친구가 B 씨, C 씨와 함께 E 씨를 강제로 데리고 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경찰은 해당 차 번호를 조회해 B 씨의 전화번호를 확보했고, 위치 추적과 동시에 B 씨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B 씨는 태연하게 전화를 받은 뒤 "고기 사주려고 데리고 왔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네 사람의 관계를 의아해하고 있을 때, E 씨의 어머니는 "우리 딸이 며칠 전부터 계속 이상한 헛소리를 한다. 누가 물을 뿌려서 사람을 죽였다고, 사람을 땅에 묻었다고, 자기도 묻힐 것 같다며 자꾸 무섭다더라"라고 전했다.
경찰 조사에서 E 씨는 한참을 망설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고백했다. 알고 보니 E 씨 커플에게도 B 씨 일당의 검은 손이 뻗친 것이었다.
어느 날, E 씨는 알고 지내던 C 씨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았다. 당시 E 씨가 "남자 친구와 같이 지낼 곳이 없다"고 하자, C 씨는 "우리 커플과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E 씨 커플은 B 씨 일당의 원룸에서 6개월간 동거하며 A 씨와 같은 피해자가 됐다. E 씨의 남자 친구 역시 3급 지적장애인이었다.
B 씨 일당은 E 씨에게도 성매매시켰고, E 씨 남자 친구에게는 일용직으로 돈을 벌어오게 한 뒤 이를 갈취헸다. 가해자들은 E 씨 커플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휴대전화에 위치 추적 앱을 깔기도 했다.
아울러 E 씨 커플은 원치 않게 A 씨가 살해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시신 유기에 가담했다고 한다. 참다못한 E 씨가 무서운 마음에 남자 친구를 놔두고 홀로 탈출했다가 B 씨 일당들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경찰은 곧장 익산 원룸에서 B 씨, C 씨 그리고 D 씨 등 3명을 모두 체포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F 씨도 그 원룸에 있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다며 "그 안에 있으면 누구 한 사람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내가 아는 피해자만 5명"이라고 회상했다.
F 씨는 "세 사람의 목적은 돈이었다. 제가 있을 당시에는 주 수입이 저였다"며 "12시간 이상을 성매매했다. 원하는 액수만큼 안 채워지면 14시간 시켰다. 하루에 10명을 만날 때도 있었다"고 밝혔다.
B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 시체유기, 성매매 교사, 감금, 특수상해 등 무려 15가지나 됐다. 교도소에 갇힌 B 씨는 "난 주범이 아니다"라며 A 씨 고모에게 피해 상황이 녹음된 음성파일을 보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음성 파일에는 "야 너 베란다라고 영역 표시하냐?", "네가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 걸레만도 못한 X이야. 버러지 같은 X이야. 알아?", "죽여봐! 죽여봐!" 등 내용이 담겼다.
1심 재판부는 주범 B 씨에게는 징역 30년, C 씨에게는 살인 방조 및 시체유기 혐의로 징역 7년 그리고 범행에 가담한 D 씨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B 씨 등과 검찰은 모두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특히 B 씨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B 씨는 "(A 씨에게) 장애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 많은 반성을 하며 다시는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갈 생각"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가족만이 제 말을 들어줬다. 이제는 아닌 걸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살인하지 않았던 제가 살인자가 됐고, 주범이 아닌 제가 주범이 됐다"고 주장했다.

B 씨 모친도 나섰다. 모친은 "방송에 나올까 말까 망설였는데 나오면 제 아들이 좀 억울한 게 풀리지 않을까 싶다"며 "아들이 (A 씨를) 때린 것까지는 모르겠다. 제가 들은 건 아들은 거의 말로만 과격하게 했다. 살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강조했다.
B 씨의 친구도 "(범행 사실에) 맞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하지만, 그걸 좀 제대로 잡았으면 좋겠다"며 B 씨가 마치 억울한 옥살이를 하듯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2020년 12월 9일,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B 씨에게 원심보다 높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C 씨와 D 씨에게도 각각 징역 8년과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인간으로서 인격체로서 가장 기본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질책하며, 수감 시간 동안 깊이 반성하고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어달라고 했다.
E 씨 커플은 공동감금죄와 사체 유기죄로 기소됐으나 집행유예 선고로 마무리됐다.
한편 당시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조사 다 끝나고 B 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냐'고 하자, 아내 C 씨를 불러달라고 하더라. 그러더니 '사랑한다. 뽀뽀 한 번 하자'고 하더라. C 씨는 콧방귀를 뀌고 호송차에 탔다. 제일 황당했다"고 회상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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