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홍유진 정재민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부상하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6월초 조기 대선에 맞춰 개헌이 이뤄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개헌을 위한 법적 절차가 까다로울뿐더러, 구체적인 방향성 두고 여러 의견이 난립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87체제'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만큼, 권력구조 개편 등 점진적으로나마 개헌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8일 국회 및 법조계에 따르면 정치권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및 탄핵 사태를 거치며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6일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하면서 개헌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하지만 6월초로 예상되는 조기 대선에 맞춰 개헌안을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대선을 두 달여 앞둔 현시점에서 개헌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우선 개헌을 위한 법적 요건은 탄핵보다도 까다롭다. 국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돼야 할 뿐만 아니라,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또 국민투표법에 따라 개헌 국민투표를 위해서는 최소 38일이 필요하다. 6월 초 조기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뤄지려면 적어도 4월 말까지는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가 구조와 국민 지위를 정하는 기초법을 한 달 만에 만들 수가 있느냐"며 "38일 만에 가능하다고 하는데 스위스는 헌법을 바꾸는 데 40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논의해야 할 헌법 조항이 너무 광범위해서 대선 전까지는 절대 불가능하고, 그렇게 졸속으로 해서도 안 된다"며 "개헌은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내다봤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우리나라 헌정사를 보면 혁명이 아니고서는 개헌이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지금처럼 정파적인 차원에서는 개헌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지난 1987년 개헌 이후 역대 정부마다 개헌 논의와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만약 개헌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경우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이 될 전망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중임제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으로 바꾸는 방안이다.
구체적인 개헌 방향을 두고는 법조인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낡은 헌법 체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반면, 개헌 찬성론자를 중심으로 '원포인트 개헌'으로 접근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제왕적 국회, 사법부의 코드 인사 등 이번 계엄 사태로써 확인된 시급한 문제부터 합의한 뒤 나머지는 점진적으로 해도 된다"며 "탄핵소추권 오남용 문제를 막기 위해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더라도 권한 행사가 자동 정지되지는 않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대법관, 헌법재판관, 헌법재판소장을 모두 국회에서 선출하되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도록 해서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가 되는 사람이 더는 재판관을 못 하도록 막을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반면 노 변호사는 "원포인트 개헌보다는 오랜 숙고를 거쳐 21세기 신생 기본권 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 모두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유불리 셈법이 결국 개헌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회의적 시각도 크다. 특히 대선 국면에서 강자일수록 개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도 있다.
김 교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권력구조를 개편할 수가 없다"며 "국회의원 임기가 많이 남은 상황에서 당장 내각제로 바꿀 수도 없고, 분권형 대통령제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남는 건 대통령제하에서 임기만 바꾸겠다는 건데, 국민들에게 오해를 사기 십상"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헌정질서를 함부로 아무나 파괴할 수 없다는 걸 국민들이 이번 기회로 보여줬다"며 "숨 좀 돌리고 난 뒤 충분히 논의할 시간과 플랫폼을 만들고서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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