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철 기자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94)가 30일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관련 기업과 일본정부에 대해 책임있는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장 강제집행 신청 등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해당 기업과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이다.
30일 이춘식씨와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위원회 등 시민단체는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신일본제철은 피해자 1인당 1억원씩을 지급해야 한다. 13년간 소송이 진행되면서 소송 당사자 4명 중 3명(고 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씨만이 유일하게 생존해있다.
이씨는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후 "우리 (원고가)네 사람인데 나 혼자 재판을 받아서(승소 장면을 봐서) 마음이 아프고 서럽다"며 "같이 고난을 겪었는데 조금만 참았더라면(살아있었더라면) 좋았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국내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졌지만 실제 이씨가 위자료를 받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실제로 일본기업이 순순히 위자료를 지불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에 대해 피해자 측은 강제집행보다는 우선 신일철주금에 배상 의사를 타진해 볼 계획이다.
이씨의 변호인인 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통상의 절차는 법원에 집행문을 받아 강제집행 절차로 나아갈 수 있다"며 "신일철주금이 포스코 제철소에 3%가량 지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당 주식에 대한 집행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2013년 판결(서울고등법원 일부 승소)만 갖고도 신일철주금에 대해 가집행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었지만 회사측의 답변을 기다리는 취지에서 (가집행을)하지 않았다"며 "강제집행 여부는 좀 더 논의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시헌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협정 밖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일 간에 합의가 없다는 것이 오늘 확인된 것"이라면서 "앞으로 이에 관해 한일 간 협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고, 협의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제 중재를 통해 분쟁 해결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은 "피해자들이 고령인데 국제 분쟁 해결 절차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한일 간에 과거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관해 청구권협정 외에 추가 협정을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승소로 인해 향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길도 열렸다.
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청구권협정에 관한 쟁점이 핵심"이라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 대법원의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했는가는 오랫동안 논란이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이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며 "아직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분들은 오늘부터 빠른시일 내에 소송을 제기해서 사법적 절차를 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신일철주금은 이번 판결을 성실하게 준수하고 사죄와 추모 등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을 수립하기 바란다"며 "일본정부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유해와 유골 반환, 공식 사죄, 피해배상, 추모와 기념, 역사교육, 재발방지 등 행동에 나서라"고 강조했다.
ir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