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동결을 대가로 평화 협정과 경제 협력을 약속한 '첫 북핵 합의'인 '제네바 합의'가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자칫하면 무산될 뻔한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같은 내용은 외교부가 28일 공개한 38만여 쪽의 비밀해제 외교문서에 담겼다. 외교부는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의 비밀을 일부 해제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지난 1994년 7월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북핵대사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당시 외교부 제1부부장)이 만났다. 이들은 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3단계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했다.
당시 북한 측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핵 문제의 완전 해결'을 확인한 1993년 북미 간 공동성명에 기초해 △최단기간 '경수로 도입' 및 흑연로 대체 △'핵무기 포함 무력 불사용'에 대한 미국의 법적·실제적 보장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합의 원칙의 제도화 △'안전조치의 공정한 적용' 실현을 위한 미국 측의 구체적 약속을 요구했다.
이 회담은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북한이 핵 시설에 대한 사찰을 요구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마찰로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한 지 1년 만에 개최됐다는 점에서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북미 고위급 회담은 1차 회담 첫날부터 '김일성 주석 사망'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차질을 빚었다. 북한 측 대표단이 돌연 회담을 중단하자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조의를 표명하며 조속한 북미 회담의 속개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갈루치 대사도 북한 대표단과 접촉을 시도하며 '기약 없이 제네바에서 머물며 기다리겠다'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김 주석 사망 사흘 만인 7월 11일이 돼서야 북미는 3단계 고위급 회담의 제1차 회담을 개시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NPT 체제 복귀 및 IAEA의 핵 사찰 전면 수용, 비핵화 공동선언 등을 요구했고 북한은 북미관계 정상화, 경수로 지원,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 불사용 보장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도 여전히 일부 내용은 '기밀'로 비공개 처리됐다. 그 때문에, 김 주석 사망 후 1차 회담이 열릴 때까지 북미가 물밑에서 어떠한 소통을 주고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고위급 회담은 성공적으로 이어져 북미는 북한의 핵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양측이 정치·경제관계의 정상화를 약속하고 핵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기로 한 '제네바 합의'를 도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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