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감국가' 두달 몰랐던 정부…4월 15일 시행 전 대응 비상

외교부, 미 정부 사실 인정 이후에도 "공식 설명 못 들어"
전문가 "국회가 나서 미국에 '핵 무장 없다' 결의안 전달해야"

조태열 외교부 장관. 2025.3.1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조태열 외교부 장관. 2025.3.1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미 에너지부(DOE)가 조 바이든 행정부 막판인 지난 1월 초에 이미 한국을 '민감국가' 분류 대상에 올린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그렇지만 정부는 아직 미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무려 두 달간 미국의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감국가 분류에 따른 미국의 조치는 불과 한 달 뒤인 4월 15일부터 공식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미국과의 교섭을 위한 카드를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16일 제기된다.

美 동향 파악 부실…에너지부 '확인' 후에도 정부는 '침묵'

미국에서 에너지와 원자력, 핵 정책 업무를 담당하는 에너지부의 벤 디트리히 대변인은 뉴스1에 "정부는 전임 행정부 때인 지난 1월 초에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 SCL) 최하위 범주(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에너지부는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올린 배경을 별도로 설명하진 않았다.

지난 10일 언론 보도로 관련 동향이 보도됐을 때 정부는 "미국 측과 소통하며 사실관계 파악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공식 입장은 약 사흘간 유지됐다. 그런데 교섭에 나선 외교부 내에서도 '민감국가라는 말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라는 말이 나왔다. 정부가 미국과의 소통 내용을 외교적 이유로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사안을 전혀 대비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진단이 가능한 대목이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미국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에너지부도 내부적으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라고 밝혔지만 지난 1월 초에 이미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올렸다는 디트히리 대변인의 입장을 보면 조 장관 역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에너지부의 입장이 언론에 보도된 당일에도 외교부는 "아직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 답변을 받지 못했다"라며 정부 차원의 입장을 내지 못했다.

본문 이미지 - 외교부 전경. 2024.10.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외교부 전경. 2024.10.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미국, 왜 한국을 민감국가로 보나…'핵 무장론' 증폭이 원인

이런 상황으로 미뤄봤을 때 정부가 한 달 남은 기간에 제대로 된 교섭을 진행하긴 어려워 보인다. 경위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대응책을 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2023년부터 한국 내에서 여론이 형성된 '핵 무장론'을 미국이 의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월 '한국의 전술핵 배치'나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미국과 적절한 소통 없이 대통령과 여권에서 핵 무장론이 제기된 것에 대해 미국의 경각심을 보여 주는 증거라는 이야기다.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한국 내 혼란에 따른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일회성 조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는 지난 11일 조태열 장관의 발언을 미국의 이번 조치가 한국의 국정 혼란이 정리되는 대로 철회될 것이라는 전망과 연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너지부가 민감국가 지정 이유로 국가안보·핵 비확산 등을 이유로 들고 있고, 미국이 한국과 관련 소통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그만큼 이 사안이 민감한 문제라는 방증인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 사태보다 핵 무장론 여론 조성이 이번 조치의 이유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파괴적 외교'를 우려해 사전 차단 조치를 내렸다고 보기도 한다. 한국과 같은 명단에 국제 분쟁에 연관된 이스라엘, 대만, 우크라이나 등이 포함된 것으로 봤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의 핵 보유 관련 파격 결심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뜻이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정부…전문가 "국회가 나서 결의안 내야"

문제는 핵 무장론 여론 증폭이 민감국가 분류의 이유라면 이에 대해 정부가 미국에 어떤 '조치'를 약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 조치를 철회하게 할 '카드'를 제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으로 인해 이 사안이 한국에 제시한 미국의 각종 청구서와 결부돼 압박 요인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에너지부는 이번 조치가 한국을 '미국의 적대국'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어떤 제재나 제한 조치 없이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을 안심시키는 듯한 발언은 역설적으로 미국이 당장 내달까지 결정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방침을 번복하기엔 적지 않은 부담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 사안은 결국 대통령실과 백악관이 소통하는 게 맞지만, 리더십 부재로 인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이어 "가능성은 작지만 국회 차원에서 '미국의 확장억제가 보장되는 한 자체 핵 무장은 선택지로 두지 않는다'는 공신력 있는 결의안을 보내는 것이 (철회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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