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미국 정부가 '민감국가 리스트'에 지난 1월 한국을 추가한 사실이 15일 공식 확인되면서 한미 동맹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에너지와 원자력, 핵 정책 업무를 담당하는 에너지부(DOE)는 이날 벤 디트리히 대변인 명의로 뉴스1에 "미국 정부는 지난 1월 초에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 SCL) 최하위 범주(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라고 공식 확인했다.
미국은 국가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 '정책적 이유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국가'들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올리고, 해당 국가들은 미국과 원자력, 인공지능(AI) 등의 협력이 제한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상황에서 한국이 민감국가에 분류되면 한미 핵 협력이 제한받을 수도 있어 우려가 나온다. 또 등급 차이가 있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포함된 리스트에 동맹국인 한국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다음달 15일 시행을 앞두고 미국과 협의를 통해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으나 뒤늦은 상황 파악으로 대응에 늦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 정국 속 제기돼 왔던 한미간 소통 부재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정부의 늦장 대응이 도마위에 오른 것이다.
외교부는 이날 "우리 정부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미 정부 관계기관들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며 "한미 간 에너지·과학기술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적극 교섭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DOE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트럼프 현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1월 초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졌다.
바이든 정부가 어떤 이유로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하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시점상 한국 정치권과 학계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따른 국내 '핵 무장론', '핵 자강론'이 확산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북한의 도발이 고조될 경우 전술핵 배치 또는 자체 핵 보유를 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국내에서 찬성 목소리가 높아지자 미국이 이를 경계하는 차원에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조심스럽지만 이런 움직임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한국에서 나온 핵무장론 때문에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라며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한국이 다시금 핵무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라는 경고음이 내부적으로 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한미 동맹의 신뢰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중국, 러시아, 시리아, 북한, 이란 등이 포함돼 있는 '민감국가 명단'에 오른다는 것 자체로 동맹 신뢰를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DOE의 민감국가 명단에는 북한·이란이 '테러지원국'으로, 중국·러시아 등은 '위험국가'로 분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DOE는 이번 조치로 한미 양자 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고, 상호 방문 또는 기술 협력 사업이 금지되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내달 15일 리스트가 발효되면 한미 간 원자력·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실질적 협력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미 연구 기관이 교류 또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DOE 내부에서 사전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협력 심리 자체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문형남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융합대학 학장 겸 글로벌융합학부 교수는 "이번 조치는 외교·경제·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한국이 SCL에 포함된 배경과 미국 정부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해제하거나 완화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월 '민감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추가한 사실이 공식 확인되면서 우리 정부의 늦장 대응에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최근 설명을 종합하면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들은 에너지부가 지난 1월에 취한 조치를 두 달여 넘도록 관련 동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1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DOE의 검토 사항을 '비공식 경로'를 통해 알게 돼 경위를 파악 중이라며 "아직 '민감국가' 분류가 최종 확정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한국의 민감국가 포함에 대한 공식 안내를 받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이같은 동향을 두달 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다음달 15일 목록 효력 발효를 앞두고 미국과 협의를 통해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상 외교가 가동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한 달이란 시간 내 미국 정부의 스탠스를 돌리기엔 현실적으로 시간적 제약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같은 동향을 인지하지 못한 데는 지난해 12·3 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그간 한미 동맹에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으로 한미 간 주요한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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