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재점화되는 가운데 한국을 우군으로 만들려는 양국의 '밀당'도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이 '정상 외교'를 진행하긴 어렵지만, 전통적 동맹 미국과 '가장 센 이웃'인 중국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대북정책 및 한반도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케빈 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는 최근 방한해 조야에서 제기되는 '코리아 패싱'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은 '탑 다운'식 대화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면 한국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나온 개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의 친분을 집중적으로 과시하면서도 한국에는 이렇다 할 메시지를 내지 않아 '패싱'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를 의식한 듯 케빈 김 부차관보는 한국을 향한 우호적 메시지를 내는 데 집중했다.
그는 "(북미대화 과정에서) 한국이 어느 정도 수준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다"라거나 "이번 일을 맡으면서 한국과 미국의 고위급 소통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나 걱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라고 발언했다. 또 "미국은 한국에 거는 기대치가 매우, 매우 높다"라고도 말했다.
미국은 퇴근 한국과 일본에 대중 견제 동참의 수준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에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진행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 공동성명에는 이전에 없던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 참여를 지지한다'라는 문안이 삽입됐는데, 이는 미국 측의 요구로 들어간 것이다.
비록 김 부차관보가 우호적인 메시지를 들고 방한했지만, 미국의 현 관심사가 한반도보다는 중국 견제 강화에 맞춰져 있고, 한국과의 '정상 외교' 재개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실제 외교 당국 간 협의에선 대중 견제라는 '청구서'를 제시하며 관련 논의를 진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김 부차관보의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 중국도 '한중관계의 안정적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채찍과 당근을 모두 제시했다.
다이빙 주한중국대사는 지난 25일 국내 언론과 가진 만찬회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경제 협력에 집중하면서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중국이 미국이 한국 기업인들에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면 환경 평가 등 행정 절차의 신속 처리를 지원하겠다"라는 방침을 밝히며 경제적 밀착을 강하게 주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된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적 투자가 미국에 쏠릴 것을 대한 우려라는 것이다.
그는 "향후 10년 내 중국의 중산층은 4억 명에서 8억 명으로 성장할 것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국이 될 것"이라고 중국 시장의 '장점'을 언급하면서도 "이 시기에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면 3년에서 5년 이내에 다시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은근한 경고도 던졌다.
아울러 "미국 측이 제기하는 부당한 요구 앞에서 한국은 자국의 이익과 중한 양국 공동 이익에 입각해 관련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도 말했는데, 이는 미국의 대중 견제 동참 요구에 한국이 '흔들리지 말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한국을 '지켜보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이에 따른 한국에 대한 '밀당'은 한국의 외교가 정상화되는 시점이 되면 더 표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두 나라의 동향은 일종의 '전초전'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이르면 내달 방한할 것으로 예상되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의 손에 '함정 유지보수(MRO) 협력'이라는 선물을 쥐어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라는 '카드'를 흔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중이 한국에 내밀 청구서의 액수는 적지 않겠지만, 두 나라가 가진 카드에 '거래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미중 외교를 통해 얻을 이익이 더 클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외교의 정상화 전까지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의 목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지 않도록 내밀한 소통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미중 양국이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우리에게 기회가 되는 측면도 있다"라며 "핵심 동맹과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와의 관계 설정에서 일단은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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