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기현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 심판 선고에서 헌법재판관 8인 의견이 '5대 2대 1'로 갈리자, 정치권은 입맛에 맞지 않는 의견을 낸 재판관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여야 지지층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강하게 결집한 상태에서 재판관 개인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한 권한대행 탄핵이 기각된 직후 국민의힘 내에서는 '나 홀로'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재판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정 재판관은 임명되기 전부터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여러 문제를 제기했었는데, 이번 판결 결과를 봤을 때 그 문제 제기에 어느 정도 타당한 측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재판관은 이번 선고에서 한 권한대행의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거부, 국회가 추천한 헌재 재판관 후보자 3명 임명 거부는 헌법 및 법률 위반이며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라고 밝혔다.
유영하 의원은 페이스북에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낸 자가 정계선"이라며 "원래 이 자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아니면 언감생심 헌법재판관은 꿈도 꿀 수 없는 하류"라고 원색 비난했다. 박수영 의원은 재판관별 판결 현황과 함께 "도대체 정계선은 뭐냐"고 적었다.
반면 야권에서는 정 재판관을 옹호하는 동시에, 엘리트 재판관들이 국민의 뜻에 반해 결정을 내렸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은 정 재판관의 의견문을 낭독한 후 "이와 같은 판단은 다수 의견에 이르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공동체 복원을 바라는 민심을 외면한 법복 귀족들의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관 8인 중 기각 결정을 내린 김복형 재판관과 각하 결정을 내린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 재판관은 한 총리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것이 법률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나머지 재판관들이 법률은 위반했으나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위법은 아니라고 밝힌 점과 전혀 다른 판단이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탄핵소추의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의미로, 이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절차적 문제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을 여지를 보여준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도 엘리트 법관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는 전날 광화문 앞에서 열린 최고위회의에서 "일부 엘리트들의 편협한 사고로 그간 쌓아온 우리 경제가 무너지고 국민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며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도록, 이제는 책임 있는 의사표시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도 같은 회의에서 헌법재판관들이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판결을 한 점을 비판했다. 그는 "국민은 경범죄 처벌법을 어겨도, (또) 형법 조항이든 식품위생법이든 어기면 다 제재받고 처벌받는다"며 "그런데 권한대행은 헌법상 의무를 명시적으로, 의도적으로, 악의를 갖고 어겨도 용서가 되나. 이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를 향한 정치권의 위력 과시는 이미 일상적인 일이 됐지만, 양당 지지층의 열기가 한껏 달아오른 상황에서 재판관 개인을 '악마화'하는 일은 헌재 독립성에 치명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지지층이 결집해 있는 데다가 소요 사태 우려도 있어 자칫 위험할 수 있다"며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자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재판관 개인의 의견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치권이 비판할 수 있다"면서도 "재판관의 이념이나 사상으로 접근하면 위험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