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한재준 서상혁 임세원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법사위에서 일방 처리했다.
정부·여당은 물론 경제계까지 반대하고 있지만 주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법안의 명분이 '개미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 본회의 단독 처리도 불사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측이 부담을 느낀다는 점도 법안 처리를 강행할 수 있는 배경이다. 윤석열 정부 또한 주주의 이익 보호 장치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해 왔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6일 전체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이로써 상법 개정안은 27일 본회의 의결만 남겨두게 됐다.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처리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한편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규정했다.
지금까지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로 한정돼 있어 합병·분할 등 기업 지배구조 개편 시 소액 주주의 이익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이사회가 회사는 물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을 놓고 경영계와 정부·여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미래지향적인 사업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게 하는 기업 발목 비틀기"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정부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경제 8단체도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대한민국을 기업 하기 힘든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주요 선진국에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 입법 사례가 없다는 점도 들고 있다.
다만 민주당의 이같은 경제계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보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 보호와 경영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선언적 의미의 조항이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주장에 선을 긋고 있다.
노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삼일회계법인 거버넌스 포커스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나라는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의무를 개념적으로 독립시켜 왔지만 해외는 전체로서의 주주 이익과 회사 이익을 별도로 관념화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주 충실 의무에 따른 소송 남발 우려에 대해서도 "이 정도의 입법으로 이사를 상대로 소송이 빈발하거나 회사 경영이 마비되는 상황을 상정하기란 쉽지 않다"며 "논란이 많은 불공정한 합병에 관한 정밀 타격 방안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실질적으로 기업의 우려가 큰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 투표제를 추후 과제로 남겨놨다는 점도 민주당이 법안 강행 과정에서 부담을 덜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오기형 의원은 뉴스1과 통화에서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향후 토론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며 "당의 입장과 국회 논의와는 별개이기 때문에 상임위에서 논의가 숙성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자본시장법 개정을 대안으로 내세우며 상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지만 국민의힘 입장에서 적극 반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민주당의 법안 강행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윤석열 정부 또한 정권 초기 상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해 왔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합병이나 공개매수 과정에서 지배주주만을 위한 의사결정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특히 이같은 상법 개정안에 대한 개미 투자자들의 찬성 여론이 높아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투자소득세 과세를 반대했었는데, 이제 와 상법 개정안을 반대한다면 개인 투자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라며 "내부적으로도 개미들의 여론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편 민주당은 27일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다시 법안 처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상법 개정안에 대해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이 선진 자본시장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며 "상법 개정안은 이복현 금감원장도, 한동훈 전 대표도, 대통령도 심지어 필요하다고 했는데 왜 이제 와서 반대하냐, 일단 반대부터 해서는 만년 야당도 하기 어렵다"고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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