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원=뉴스1) 박민석 기자 = 1960년 3월 15일. 당시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에서 2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던 김익권 씨(82)는 정·부통령 선거일을 맞아 학교 인근 자취방에서 홀로 있다 3.15 부정선거를 마주했다.
김 씨는 "그날은 선거일이라 휴일이었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부정선거를 한다는 말이 많이 들렸다"며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시내로 나가보니 사람들이 모여 '선거를 다시하라'며 부정 선거에 항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김 씨와 친구들은 대열에 서서 시민들과 함께 부정선거에 항의했다. 그러던 중 경찰의 총격이 있자 몸을 피해 다른 거리의 대열에 합류해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혈기에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았던 '데모 참여'는 수 일이 지나 그를 다시 거리로 나서게 했다. 같은 학교 후배인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4월 11일 오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는 마산상고 학생들과 함께 학교 밖으로 나왔고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을 비판했다. 마산에서의 항거는 곧 전국에서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3.15 의거는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최초의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올해 제65주년 3.15 의거 기념일은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으로 탄핵 소추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채 맞이하게 됐다.

제65주년 3.15 의거 기념일인 15일. 당시 의거에 참여한 김 씨는 지난해 12월 3일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충격적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처음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 났다는 생각과 함께 3.15 의거 당시가 떠올랐다"며 "대통령은 자기 권한으로 비상계엄을 했다고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볼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하게 생각할텐데 나도 당시에는 광주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 걱정했다"며 "지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헌법재판소가 올바른 결과를 내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3.15 부정선거의 본질은 내란행위였지만 당시 관련자 처벌 등 과거 청산에 실패해 이번 불법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3.15 의거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장희 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3.15 의거의 현대적 함의' 토론 발제에서 "3·15 부정선거는 그 본질상 내란 행위에 해당함에도 관련자의 형사 처벌은 충분하지 못했다"며 "우리 역사에서 내란 사태가 반복된 것은 일정 부분 형사처벌 등 과거 청산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동준 변호사는 "2024년에 계엄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국내외 사례를 볼 때 한 번 일어난 헌정질서 파괴 문제는 반복되기 쉽다"며 "제도적 견제 장치가 마련되거나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3.15 의거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해서는 3.15 의거의 의미를 알리고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3.15 의거에 참여한 김 씨는 "3.15 의거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부정선거에 항거해 희생되면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4.19혁명의 태동이 됐다"며 "3.15 의거가 늦게나마 국가기념일 지정은 됐지만 4.19 혁명 안에 포함돼 그 의미가 축소된 것은 안타깝다. 3.15와 4.19가 연속된 민주화 운동으로 있었다는 가치에 대한 재정립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주임환 3.15기념사업회 회장은 "3.15 의거와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역사적 사실에서 얻은 교훈을 계승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래 세대인 학생들을 비롯해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다른 민주화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3.15 의거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교육을 통해 계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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