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633년 4월 12일, 이탈리아의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철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소에 소환되어 역사에 길이 남을 재판이 시작됐다.
갈릴레오의 죄목은 당시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이었던 지구 중심설(천동설)을 부정하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지동설)을 지지하고 가르쳤다는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 발견, 달 표면의 울퉁불퉁함, 태양의 흑점 등을 통해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동시에 교회 권위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특히 1632년 출판된 갈릴레오의 저서 '두 개의 주요 세계 체계에 대한 대화'는 지동설을 옹호하는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며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심기를 건드렸다.
갈릴레오는 이단 혐의로 심문을 받고 지동설 주장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는 결국 자신의 주장을 부인하는 서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약 직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읊조렸다 한다. 하지만 이는 극적 효과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는 주장이 있다.
재판 결과, 갈릴레오는 이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 가택 연금형에 처해졌다. 그의 저서는 금서 목록에 올랐다. 그는 죽을 때까지 외부와의 자유로운 소통이 차단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다.
갈릴레오 종교재판은 과학의 발전과 종교적 권위 사이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 재판은 과학적 탐구의 자유와 종교적 신념의 조화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졌으며, 이후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후반, 가톨릭교회는 갈릴레오 재판에 대한 공식적인 재조사를 진행했고,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오에게 부당한 판결이 내려졌음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는 과학과 종교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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