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동네 가게로 식재료를 사 오는 심부름을 하곤 했다. 당시엔 구멍가게라고 하여 두부, 콩나물, 간단한 야채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 콩나물 100원어치를 산다고 하면 가게 주인은 검은 천에 덮인 플라스틱 통에서 콩나물 한 주먹을 뽑아 주셨다.
지금이야 대규모로 만들어 선별, 세척까지 일사천리로 완료되니 씻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당시 콩나물은 가게에서 한동안 길러지고 콩나물 머리에는 콩깍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콩나물 소비는 지금보다 많았고 콩나물은 도시락 반찬에도 빠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친구의 반찬을 보면 콩나물 옆에 작은 은박지로 칸을 만들고 약고추장을 따로 담아왔다. 이 고추장과 콩나물을 즉석에서 섞으면 무척 맛있는 무침이 됐다. 아직도 기억나는 별미이다.
콩나물은 뭐니 뭐니 해도 시원한 국물이 최고였다. 전날 술을 과음하신 부친을 위해 콩나물국을 끓여 드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인 것 같은데 평소 어머니 요리법을 눈여겨 보다가 만든 것이었다. 멸치 몇 마리 넣고 끓이다 건져 내고, 콩나물에 다진 마늘과 대파를 넣었다. 아버지께서는 한 그릇 들이키고는 "네 엄마가 한 것과 비슷하다"고 칭찬을 하셨다.
우리 가족의 콩나물 사랑은 유별났다. 부친은 복지리를 주문하면 꼭 콩나물을 리필해서 드셨고, 나는 아귀찜을 시키면 콩나물 먹는 재미가 고기보다 좋았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년 콩나물 소비량은 6.8㎏에 달한다고 한다. 300g 봉지로 22개 정도 되는 양이다. 해장 문화도 엄청났던 때이니 콩나물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식품이었다.
콩나물로 가장 유명한 도시가 있다면 전주를 빼놓을 수 없다. 전주식 콩나물해장국은 전국 각지에 다양한 스타일로 영향을 미쳤다. 수란, 구운 김, 오징어 육수의 국물은 감칠맛이 있으면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해장국은 아니지만 풍성한 콩나물이 빠지지 않는 돼지갈비 요리도 전주에서 유명하다. 물갈비라고 하는 이 음식은 돼지갈비를 끓여가면서 먹는 음식이다. 전골식으로 제공되고 풍성한 콩나물로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갈비가 육수에서 익으면서 육수 맛이 농축돼 진해지니 약간의 인내심은 필요하다.
전주비빔밥에도 콩나물무침이 빠지지 않는다. 또 전주 한정식에도 콩나물을 사용한 반찬이 한두 개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지난달 연휴에 직접 전주를 다녀오면서 느낀 점은 콩나물의 미덕은 적은 양으로도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도록 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물갈비의 돼지갈비를 그대로 구워 먹었다면 왠지 고기양이 부족했을 것 같다. 콩나물과 함께 전골 스타일로 끓이면서 풍성한 양이 되었다.
예전 문헌을 봐도 콩나물은 적은 양으로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던 식품으로 기록돼 있다. 고려 고종 때 콩에 싹을 틔워 햇볕에 말려 약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왕건이 병사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콩의 싹을 틔워 먹였다는 이야기기도 전해진다.
지난해부터 기후변화로 야채 가격변동이 심하다. 요즘 양배추, 무 같은 월동채소의 가격은 지난해 1월과 비교해 2배 이상 올랐다. 콩나물은 수경재배로 기후 영향에서 비켜나 가격이 안정적이다. 콩의 싹을 식재료로 만든 조상님들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것일까? 21세기 구황 채소로 콩나물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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