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를 90일간 전격 유예한 데 대해 경제계가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며 안도하고 있다. 하지만 관세 정책이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대응이 쉽지 않고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가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별 관세 역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10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간을 벌었다는 측면에선 이번 상호 관세 유예 결정은 괜찮다"고 전했다. 한 부품업계 관계자 역시 "이번 상호 관세 유예 조치로 한숨 돌리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상호 관세가 유예된 시간이 90일이라는 데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봤다. 현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미국과의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이다. 설령, 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못하더라도 조기 대선에 따라 6월 3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신임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해 관세 협상에 속도를 낼 수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예 기간 동안 정부가 협상에 최선을 다하지 않겠느냐"며 "관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협의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예 기간 90일이면 대선 후 새 정부가 들어선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락가락 정책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상호 관세가 발효된 지 13시간여 만에 유예되는 등 정책 변동성이 심하기에 대책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에는 유예했지만 앞으로 (관세 부과가) 안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을 못하겠다"며 급변하는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혼란스럽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자체적으로 대책을 숙의하고 있는데 조변석개(朝變夕改, 계획이나 결정 따위를 일관성 없이 자주 고친다는 뜻)해서 바뀐다"며 "이번에는 유예 결정을 그렇지만 내일, 그리고 이후에는 어떻게 정책이 바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이 일파만파 확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 역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이 관세 전쟁의 타깃을 중국으로 집중한 만큼 G2 간의 제2차 무역전쟁에 불이 붙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 유예 대신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했지만 중국에는 125%로 관세를 높였다.
중국에 대한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라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중국 역시 대응책으로 미국을 제외한 다른 시장에서 저가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우리나라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품목 관세 역시 추가 지정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미국은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대한 품목 관세 25%를 부과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 수출 상품인 반도체에 대해서도 품목 관세 부과를 꾸준히 시사하기도 했다. 반도체 외에도 의약품에 대한 품목 관세도 지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와 의약품 역시 25%의 관세가 예상된다.
정부는 미국과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일 미국에 도착한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를 만났으며, 9일에는 상무부 윌리엄 키밋 국제무역 차관 내정자와 제프리 케슬러 산업안보국(BIS) 차관을 면담했다. 정 본부장은 그리어 USTR 대표에게 우리나라에 부과한 상호 관세 및 철강·자동차 등 관세 조치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하며 관세 인하 등 '특별한 대우'를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 차원의 국내 산업에 대한 지원 방안도 마련 중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팹리스, 디자인하우스, 소재·장비, 후공정 등 반도체 업계와의 간담회에서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해 반도체 지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통상리스크 대응 방안으로 수출 애로 긴급 대응, 투자 인센티브 강화, 생태계 강화 등을 준비해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현재 25%의 품목 관세가 시행 중인 자동차 산업에 대한 긴급 지원 대책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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