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고대역폭메모리(HBM ) 제조 공정의 핵심 장비인 TC본더 (열압착장비)를 둘러싼 SK하이닉스(000660)와 한미반도체(042700)의 갈등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두 회사의 '8년 동맹'이 봉합되느냐, 파탄이 나느냐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 공급망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르면 이달 말쯤 TC본더를 신규 발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TC본더는 고온과 압력을 통해 D램 을 웨이퍼 기판에 수직 적층하는 장비다. 반도체 패키징 공정의 필수 장비 중 하나로, 메모리 수율과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사용처가 HBM이다.
문제는 '수주 후보'가 다수라는 점이다. 당초 한미반도체가 솔벤더(단독 공급사)로서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100% 독점 공급해 왔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공급망 다각화를 꾀하면서 TC본더 공급처를 싱가포르 ASMPT와 한화세미텍(옛 한화정밀기계)으로 넓혔다.
양사 갈등은 한화세미텍이 지난달 SK하이닉스로부터 420억 원 규모의 TC본더 공급 계약을 수주했다고 공시하면서 촉발됐다. 양사는 2017년 HBM용 TC본더를 공동 개발한 이래 8년간 동맹 관계를 이어왔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타 고객사보다 30% 가까이 할인된 값에 TC본더를 공급해 왔는데, 한화세미텍은 '정상가'에 수주한 것이다.
특히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12월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기술 유출 및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가뜩이나 사이가 나쁜 경쟁사 제품을 8년간 동맹 관계였던 SK하이닉스가 더 비싼 가격에 구매했다는 점이 양사 갈등의 불씨를 댕겼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반도체가 마이크론에도 TC본더를 공급 중인데, SK하이닉스에는 더 저렴하게 (TC본더를) 공급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특허 침해로 소송 중인 한화세미텍에) 높은 가격으로 수주를 맡겼으니 한미반도체 입장에선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한미반도체는 최근 SK하이닉스에 납품가 28% 인상을 통보하고, 그간 무상 지원했던 CS(고객서비스)도 유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는 초강수를 뒀다. 업계에서 '슈퍼 을'(乙)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관전평이 나온 이유다.
관건은 수면 위로 표출된 양사 갈등이 어떤 결말을 맞느냐다. 두 회사가 갈라서서 서로 다른 고객사를 찾을 경우 국내 반도체 업계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HBM 세계 1위를 지키는데 한미반도체의 최정상급 TC본더가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이미 시장에선 '화해설'과 '결별설'이 풍문처럼 돌고 있다. 동시에 삼성전자와 한미반도체의 협력설도 부상한 상태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2011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와의 특허침해 소송 이후 삼성전자와 거래하지 않았으나, 양사 모두 "사업과 감정은 별개"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한미반도체가 이날 예정된 기업설명회(IR)를 돌연 연기한 점도 시장에선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1분기 확정 실적이 나오는 다음달 15일로 일정을 미뤘을 뿐이라는 입장인데, 양사 간 물밑 협상에 따른 영향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양사 관계자는 "고객사 사안에 대해선 답변할 것이 없다"고 했다.
칼자루를 쥔 쪽은 SK하이닉스다. 두 회사 모두 '기존 고객사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지난주 양사 경영진이 만나 해법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TC본더를 (28%) 인상된 가격에 한미반도체에 발주하느냐가 갈등의 향배를 짐작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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