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부과했던 상호관세를 유예하면서 국내 전력기기 업계도 한숨을 돌렸다.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기기 시장도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았는데, 상호관세가 미국 빅테크들의 AI 인프라 투자 심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하던 참이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 시각) 중국을 제외한 75개국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유예 기간에는 10%의 기본관세만 적용되며, 한국의 경우 25%에서 10%로 관세율이 낮아졌다. 다만 중국은 관세가 104%에서 125%로 상향, 즉시 부과됐다.
국내 전력기기 업계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HD현대일렉트릭(267260)·효성중공업(298040)·LS일렉트릭(010120) 3사는 미국 내 생산공장을 두고 있고 압도적인 쇼티지(공급 부족)에 힘입어 관세 폭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전력기기 슈퍼사이클의 한 축인 'AI 인프라' 투자가 더뎌질 경우 유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2일(현지 시각)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자 글로벌 빅테크들이 수익성 악화로 AI 인프라 투자를 축소하거나 연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이어졌다. AI 데이터센터 등에 배전반과 초고압변압기를 공급하는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 주가도 8~12%가량 급락했다.
하지만 상호관세가 발효 13시간 만에 유예로 방향을 틀면서 업계 우려도 일단 해소됐다. 10일 기준 전력기기 3사의 주가는 전일 대비 HD현대일렉트릭 16.73%, 효성중공업 12.94%, LS일렉트릭 12.88%씩 급등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인프라향(向) 초고압 변압기나 배전반은 당장 실적 반영이 되지 않는 요소지만 (상호관세 유예가) 다행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상호관세율이 낮아진 점도 긍정적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앨라배마, 효성중공업은 멤피스에 각각 초고압변압기 공장을 두고 있는데, 두 공장 모두 현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각각 울산 공장(HD현대일렉트릭·40%)과 창원 공장(효성중공업·10% 미만)에서 부족분을 수출하고 있다. 대부분의 물량을 현지 조달하고 있지만, 일부 수출 물량은 상호관세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대형 설비인 초고압변압기는 관세 발효에 대비해 미리 현지에 재고를 쌓아두기도 어렵다.
LS일렉트릭은 관세 영향을 더 받는다. LS일렉트릭은 미국에 배전만 공장만 두고 있는데, 초고압변압기뿐 아니라 배전변압기와 배전기기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미국향 매출 비중은 37%로 2020년 대비 13%포인트(p) 늘었다. 전력기기 3사 중 LS일렉트릭만 16.87%의 반덤핑 관세를 적용받는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전력기기 업계는 상호관세 유예로 90일간의 시간을 번 만큼, 정부의 대미협상을 지켜보며 전력망 슈퍼사이클 수요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데이터센터용 전력기기 수요 외에도, 미국과 유럽의 노후 전력망 교체 시기가 도래하면서 3사가 나란히 '실적 신기록'을 경신하는 상황이다.
이에 HD현대일렉트릭은 앨라배마 공장 증설 및 청주 배전공장 신축을 진행 중이다. 효성중공업은 멤피스 공장 증설 완료 후 추가 증설을 검토하고 있다. LS일렉트릭은 아직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밝히지 않았지만 텍사스에 부지를 확보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가 단기적으로 수요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AI 인프라나 전력망 교체 수요는 뚜렷하다"며 "관건은 정부가 미국과 (관세) 빅딜을 끌어낼 수 있냐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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