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국내 유통업계 업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8년 전과 같은 대통령 탄핵을 거쳤지만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장기 불황과 소비 부진에 고환율·고금리 등이 겹치면서 업계가 전방위로 위기에 빠진 형국이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매 판매는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이는 신용카드 대란 사태가 있었던 2003년(-3.2%)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직전인 2016년에는 1.8%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과거엔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사의 매출이 안정적이었지만 이제는 경기 침체 및 소비 부진으로 침체일로다.
이마트·롯데마트(발표 전인 홈플러스 제외)의 연간 영업이익 합계(별도 기준)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직전인 2016년 5362억 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303억 원(통상임금 등 일회성 비용 제외 시)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2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도 했다.
e커머스 업계도 상황이 비슷하다. 성장기였던 2016~2017년에는 여러 업체들이 태동하면서 시장을 키워가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소비 부진에 업체 간 경쟁까지 심화하면서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규모 미정산이 발생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겪었고, 최근에는 명품 플랫폼 발란에서 미정산이 발생했다.
특히 알리·테무·쉬인 등 중국계 업체까지 한국 시장에 대거 진출해 시장을 잠식하면서 더욱 고난에 빠진 상황이다. 11번가·SSG닷컴·G마켓·롯데온 등 지난해 주요 국내 e커머스 기업들은 쿠팡을 제외하면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불안정한 대외 환경과 지난해 계엄·탄핵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며 환율도 크게 올랐다. 연평균 환율은 2016년에는 1달러에 1161원으로 안정적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363원까지 치솟았다. 이날 기준 환율은 1달러에 1466원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 때문에 국제 식품 원자재의 수입 가격이 오르면서 식품업체의 부담이 커지고, 이는 소비자 가격의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 식량 가격지수는 2016년 91.9포인트(p)였지만 지난 3월에는 127.1을 기록했다. 주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최근 국내 식품업체들은 라면·빵·커피·맥주 등 주요 식음료 제품 가격을 전방위로 올렸다.
여기에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소비 심리가 더욱 바닥을 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7년 3월 기준금리는 1.25%였지만 지난달에는 2.75%로 두 배 이상 높았다. 같은 기간 한국은행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7에서 93.4로 3.3포인트(p) 하락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에는 88.4까지 떨어진 바 있다.
면세업계도 전혀 다른 상황에 놓였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6년 800만 명이었던 중국 관광객은 사드 사태(2017년) 및 코로나19(2020년)를 거치면서 지난해 460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에 면세점 실적도 동반 하락을 겪으면서 경영난이 지속됐다. 결국 현대면세점은 지난 1일 동대문점 폐점 및 희망퇴직 추진 등에 나섰다. 신세계면세점도 지난 1월 부산점의 문을 닫았고, 롯데면세점은 롯데월드타워점·부산점을 축소 운영 중이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지속되면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유통업체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은 2017년 3.4%로 집계됐지만 올해는 1.5%(한국은행)~1.8%(정부)로 예상된다. 그마저도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관세 정책 발표로 인해 예상치를 크게 밑돌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 8년 동안 업계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너무 힘들게 변했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라며 "개별 기업 하나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아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관련 정책 지원이 필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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