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당신 몇 주나 갖고 있어"…그리고 20년이 지났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지만…현실에선 아직 불청객
주주에 진정성 있게 답변하는 노력 포기 말아야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롯데마트맥스 영등포점에서 열린 롯데쇼핑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입장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2025.3.2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롯데마트맥스 영등포점에서 열린 롯데쇼핑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입장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2025.3.2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매년 3월이 되면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 현장에선 기자와 홍보팀 직원 사이에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홍보팀 직원들은 기자가 질문하지 않도록 당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심할 때는 사측 변호사가 무슨 질문을 할 것인지 미리 묻고 '불순분자'가 아니라는 게 입증된 후에야 입장을 허가받은 적도 있다.

주총장의 질문과 관련해 지금도 회자되는 사례는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다. 참여연대 소액주주의 이의 제기에 당시 의장인 윤종용 부회장은 "당신 몇 주나 갖고 있어"라며 격노했다. 결국 용역들에게 손발이 붙잡혀 밖으로 끌려 나왔고, 이 모습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며 기업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이젠 대놓고 쫓아내는 일이 없지만 소액주주들은 여전히 불청객이다. 자사 직원이나 우호적인 주총꾼을 불러놓고, 대본에 따라 발언권을 준 뒤 자기들끼리 박수로 안건을 통과시켜 10분 만에 끝내는 일이 지금도 많다. 의장의 "질문 있습니까"라는 말에 눈치 없는 주주가 정말로 "질문 있습니다" 한마디 던지면 분위기가 싸해지는 이유다.

소수 의견까지 고려할 순 없다는 기업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개미들이 경영 상황을 좁은 시각으로 보고 비논리적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이 주주에게 진정성 있게 답변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포기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절차적 정당성을 충족하는 것만으로 그것이 무결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20일 기자가 참석했던 한 주총에선 재무제표 승인 안건이 상정되자 한 주주가 발언권을 받았다. 그가 "원안대로 승인할 것을 동의합니다"라는 대사를 마치자 다른 주주들은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를 외쳤고, 안건은 우렁찬 박수로 통과됐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깬 건 한 주주가 계획에 없던 질문을 할 때였다. 다른 주주들은 일제히 "그냥 끝냅시다" "예의가 없네" 등 고함을 치며 제지했다. 과거에는 회사가 주주의 입을 막았지만, 지금은 주주가 다른 주주의 입을 틀어막는다.

이제 더 이상 2004년과 같은 야만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 몇 주나 갖고 있어'의 사고방식은 좀 더 세련되고 찾기 힘든 형태로 변해 반복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아직도 텅 빈 공연장에서 매년 관객 없는 연극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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