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한 달이 되면서 국가와 품목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무차별적인 '관세 전쟁'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달 들어 2주가 안 되는 짧은 시간 중국, 캐나다, 멕시코 관세 인상을 시작으로 전 세계 철강·알루미늄 관세,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모두 겨냥한 '상호관세' 도입 선언까지 예상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관세 규제가 몰아쳤다.
우방도 동맹도 가리지 않는 트럼프의 조준경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일률적으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도 관세 전쟁의 본격적인 사정권에 들었고, 4월 초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두루 고려한 '상호 관세'를 예고하면서 규제 범위는 더욱 확대됐다.
미국의 관세 전쟁 선포는 계엄·탄핵 정국으로 정상 외교가 부재한 한국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일본, 인도 등 주요국은 정상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으나, 대통령과 국무총리 탄핵으로 대대행(권한대행의 대행) 체제인 우리나라는 아직 트럼프와 통화조차 못하고 있어 협상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항공기 수입 확대 같은 통상 협상뿐 아니라 안보 협력, 비관세 장벽 관련 대응, 대미 민간 투자 확대 등 폭넓은 협상 수단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 직후부터 '미국우선무역정책' 각서에 서명하며 미국 상무부·무역대표부(USTR)에 무역적자 분석 및 글로벌 추가 관세 검토 결과를 4월까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검토가 채 끝나기도 전인 2월 1일부터 캐나다·멕시코에 25%, 중국에 10% 관세 부과 행정명령을 시작으로 2주간의 '트럼프 관세 폭풍'이 시작됐다. 이후 캐나다, 멕시코는 마약 관련 국경 강화 등을 미국에 약속해 30일 관세 부과 유예를 끌어냈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폭풍 영향권에 들어선 것은 철강·알루미늄 25% 관세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언급 후 10일에 바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에도 철강 25% 관세가 부과 추진됐으나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연계한 협상으로 쿼터제(수입할당량)로 막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쿼터제가 미국 산업 보호에 방해된다며 '예외 없음'을 강조했지만 같은 날 호주 총리와 통화 후에는 예외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 충격이 채 가기도 전인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든 카드는 '상호관세'다. 한국은 미국과의 FTA로 대부분의 관세가 철폐된 상태지만 '비관세 장벽'이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규제·수입 절차 등 비관세 장벽, 부가세 같은 세금 체계도 고려해 4월부터 상호관세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2주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압박을 하면서도 예외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트럼프 1기와 비교하면 여러 통상 조치가 있었지만 순차적이었다. 지금은 여러 형태의 관세가 동맹, 우방 가릴 것 없이 날라오고 있다"며 "다만 미국과 관세가 없는 한국 같은 나라는 미국이 상호관세로 뭘 하려 해도 근거가 마땅치 않아 비관세 장벽, 환율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다른 의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부터 정상외교·담판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계엄·탄핵 혼란으로 인한 리더십 공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한 조건이다.
주요국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경우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대미 투자와 미국산 천연가스(LNG) 수입을 공식화했고, 철강관세 예외를 요청하기도 했다. 상호관세 부과 결정 직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미국과 교역량을 늘리고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적극적으로 구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를 조율하고 있으나, 트럼프 취임 한 달이 다 되도록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최상목 권한대행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미국과 소통 문제에 대해 "대행 체제로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외교적 협상의 어려움을 인정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15일 양국 외교 수장 회담과 17일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의 방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박 차관보는 미국 정부·의회 주요 인사와 면담으로 미국 관심 사항을 파악하고 철강·알루미늄 관세 조치 관련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4월 상호관세 이전에 빠르게 협상카드 준비를 당부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통상연구실장은 "(한국 국내 정치 불확실성은) 지금 바꿀 수는 없으니, 미국의 의도, 우려, 불만을 청취하고 우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대미 투자, 미국과의 협력 및 기여 내용을 설명해서 공감대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1기 때도 그렇고 현재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에너지 수입이나 항공기 구입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현실성 검토는 해봐야 하지만 이런 것을 하나의 방법으로 올려놓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우리가 미국이 제기하는 문제 해소에 의지를 보이고 방향성을 보이면 트럼프 행정부도 (대내적으로) 성과를 거둔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비관세 장벽도 한미FTA 협상으로 상당 수준 해소된 상태라 다른 나라에 비해 협상 과제가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단장은 "FTA로 비관세 장벽이 다수 사라진 것은 미국의 관세 부과 명목을 피할 수 있어 일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우리가 미국에 먹히는 논리로 설득하는 과정이 1, 2개월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미국과 협력을 많이 했고 대미 투자도 많이 이뤄졌다. 또 미국에서 조선업 협력을 이야기하는 등 우리가 미국을 설득할 수단도 있다"며 "(비관세 장벽 이슈는) 우리가 선제적으로 파악해서 조치 계획, 의지를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한다면 설득력 있는 협상 대응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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