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1980년대 처음 발견됐다. 발견 당시 감염되면 사망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다. 이후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현재 HIV 감염인들의 기대수명은 비감염인의 평균 기대수명과 유사해졌다.
HIV 치료의 패러다임은 감염인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한 치료제가 등장할 때마다 변화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항바이러스제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칵테일 치료' 방식이 활용됐다. 과거에는 날마다 수십 개의 치료제를 복용했다.
HIV 치료는 더 발전해 단일 알약이 탄생하면서 복약 편의성이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첫 진단부터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만큼 날마다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글로벌 제약사 GSK는 환자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장기지속형 HIV 치료제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을 개발했다.
GSK가 진행한 임상시험 등에 따르면 2389명의 HIV 감염인 중 29%는 최근 30일 이내에 약 복용을 놓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주요 이유로는 △복용으로 인한 우울감이나 압박감을 느끼는 것 △HIV 감염 사실을 잊고 싶은 욕구 △일상적인 업무 등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구 결과도 유사했다. HIV 감염인 단체 '러브포원'은 HIV 감염인 164명을 대상으로 '2024 HIV 치료제에 대한 HIV 감염인의 인식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에 따르면 HIV 감염인은 치료제를 복용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복수응답으로 진행된 설문에서 주요 어려움으로는 △복용 시 다른 사람의 시선·HIV 감염 사실 노출에 대한 두려움을 응답자의 73%가 선택했다. △HIV 치료제를 매일 먹을 때마다 감염 사실이 떠올라 우울감이나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경우는 51%를 나타냈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HIV 감염인들의 미충족 수요에서 연구가 시작된 장기지속형 HIV 주사 치료제다. 날마다 약을 먹어야 했던 기존 경구 치료를 연 6회 투약으로 줄여 복약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최초 개시요법으로 2개월 동안 달마다 1회씩 주사 후, 이후 유지요법으로 2개월에 1회씩 투여한다. 기존 대비 치료 간격을 늘림으로써 감염인들이 감염 사실 노출에 대한 불안과 사회적 낙인을 완화하고, 기존 경구제로 인한 불편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복약편의성을 개선했음에도 기존 3제 경구제와 비슷한 효과를 유지하면서 치료 부담을 크게 줄였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과 3제 경구제를 직접 비교한 임상연구(임상명 SOLAR) 결과 병용요법의 비열등성이 확인됐다. 3제 요법과 유사한 수준의 안전성 프로파일이 입증됐다. 보고된 주사 부위 반응은 대부분 경미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기존 경구제에 대한 치료 만족도가 높았음에도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으로 약을 바꾼 HIV 감염인은 3제 요법을 복용한 감염인보다 치료 후 11개월·12개월 시점에서 높은 치료 만족도를 보였다.
장기지속형 HIV 주사제를 경험한 감염인의 90% 이상은 △HIV 약물 복용을 챙겨야 한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됨(85%) △편리함(83%) △HIV 감염 사실을 매일 상기시킬 필요 없음(61%) △타인에게 노출 우려 없음(59%) 등의 이유로 주사제를 선호했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지난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두 약제를 건강보험급여 목록에 신규 등재하는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약제)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했다. 오는 4월 1일부터 국내 HIV 감염인 역시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 치료 옵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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