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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10대 죽음' 선정적 다룬 SNS·언론도 책임[위기의 10대]下

'모방 자살' 의미 베르테르 효과…10대 더 취약
"아이돌 추모 마음 별개로 지나친 미화 경계해야"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2023-04-25 05:20 송고 | 2023-04-25 09:14 최종수정
편집자주 최근 닷새간 강남에서 10대 청소년 세 명이 숨지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위험신호는 이미 커져 있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2019년부터 3년간 극단선택 10대 사망자는 20%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다. 뉴스1은 주요 사례를 분석해 청소년 극단선택 대책을 모색해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한국판(민음사·알라딘 홈페이지 캡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고 새로운 생명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기 위해 죽는 것은 몇몇 고귀한 사람들만의 것입니다"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1774년 출간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일부 내용이다. 주인공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여성 로테를 흠모했으나 사랑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결국 극단선택을 암시하는 편지를 남기고 자신의 계획을 실천했다.
유럽 전역에 베르테르 의상이 유행할 정도로 이 작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독일과 프랑스 젊은이들이 소설 속 베르테르의 극단선택까지 따라했다는 점이다. 모방 자살 현상을 의미하는 '베르테르 효과'의 어원이다. 소설 출간 200년 뒤인 1974년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이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베르테르 효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닷새간 10대 세 명이 잇달아 숨지면서 '베르테르 효과가 현실이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은 물론 일부 언론까지 '10대의 극단선택'이라는 비극을 선정적으로 다루면서 베르테르 효과를 부추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죽음 애도와 무분별 재확산 구분해야"
    
25일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간접적이라도 '극단 선택'에 공감할 만한 상황을 경험했거나 해당 사건에 상당 시간 노출된 청소년들은 사건 당사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다.
단순히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해 극단선택까지 모방하는 기존 베르테르 효과의 개념이 '확장'된 셈이다. 연예인 등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다는 일반인을 따라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강남의 한 건물에서 10대 여고생이 SNS 생방송을 켠 채 극단 선택을 시도해 숨졌다. 당시 생중계된 영상을 지켜본 이는 2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상은 각종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재확산됐다. 숨진 여고생과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추측을 담은 2차 가해성 게시물이 계속 올라오기도 했다.

이튿날인 17일 오전 10시30분쯤에는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이 흉기 난동을 부린 뒤 극단 선택을 했다. 20일 강남 압구정의 한 아파트에서는 10대 학생이 떨어져 숨졌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그룹 아스트로의 멤버 문빈(25)도 하루 전인 19일 극단 선택으로 숨졌다.

베르테르 효과는 10대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일수록 베르테르 효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통계 분석 결과 2021년 청소년의 우울증 환자는 4년 전보다 90.2%나 증가했다. 더 늦기 전에 청소년의 위험한 충동을 자극하는 요소를 제한해야 하는 시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 생중계 극단선택' 관련 유해성 게시물 삭제 조처에 나섰으나 온라인에서 삭제되기까지 닷새가량 소요됐다. 경찰은 극단 선택 관련 게시 글이 자정 작용 없이 올라오는 '우울증 갤러리' 폐쇄를 요청했지만 디시인사이드 측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현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베르테르 효과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며 "안 잡히는 통계까지 합하면 위험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마음까지 드러내 소셜미디어는 기성 미디어보다 상호 작용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베트테르 효과가 SNS의 이런 특성과 결합해 가파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 News1 DB
© News1 DB

유 교수는 "최근 아이돌의 극단적 선택 보도 후 하루 평균 소셜미디어에서 40~50개의 살아생전 모습이 쇼트폼(짧은 영상)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며 "추모하는 마음은 좋지만 극단 선택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영상들도 존재해 청소년들이 동조할 수 있다"고 짚었다.

유 교수는 이어 "몇 년 전만 해도 연예인의 극단 선택 보도 후 재방송을 틀지 않는다는 등 베르테르 효과 방지 노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부분이 잘 확인되지 않는다"며 "애도와 무분별한 이미지 재확산은 구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과거 베르테르 효과를 실감한 당사자다. 2008년 10월 2일 배우 최진실씨는 안타까운 선택으로 숨졌다. 백 교수에게 진료받던 40대 여성 환자도 며칠 뒤 유명을 달리했는데, 이 환자는 최씨가 숨진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극단 선택을 시도했다. 최씨의 '극단선택 방법'을 상세하게 보도해 세상에 알린 것은 언론이었다.

백 교수는 "사건 원인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추측하게 만들거나 수단(극단선택 방법)을 알려주는 정보, 무엇보다 충격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정보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과거보다 청소년들에게 쉽게 노출돼 이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슬픔을 표현하거나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지만 정보를 재확산할 가능성이 있어 그 경계가 때론 애매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청소년들이 전문가들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방법들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베르테르 효과 억제도, 확산도 언론하기 나름 

전문가들은 10대에 미치는 베르테르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언론이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극단 선택 사건을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르테르 효과 억제도, 확산도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다.

현재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베르테르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자살보도권고기준(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다섯 가지 원칙은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할 것 △구체적인 자살 방법·도구·장소·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 것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모방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서 사용하는 것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예방 정보를 제공하는 것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이다.

자살보도권고기준이 언론 취재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으나 극단선택 관련 정보의 무분별한 확대 재생산과 자살률 억제에는 분명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2012년 '자살예방법'과 2013년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차례로 시행된 후 유명인 극단선택 보도 후 한 달간 자살률 증가 폭이 단계적으로 감소했다.

권고기준의 준수율은 상승하는 추세지만 기준에 어긋나는 사례도 여전히 적지 않다. 잇달아 발생한 극단 선택 사건으로 베르테르 효과에 10대들이 노출된 만큼 언론이 무엇을 쓰고, 쓰지 말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시도경찰청의 한 경찰관은 "극단 선택 사건을 다루는 일선에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10대의 잇따른 극단 선택에 언론도 책임감을 갖고 보도했으면 한다는 점"이라며 "마치 '단독기사' 경쟁하듯 기사를 생산하다 보면 베르테르 효과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경찰관은 "극단 선택 보도 여부는 언론이 판단해야 할 몫이지만 베르테르 효과 등 그 역기능을 고려해 신중하게 기사화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한국기자협회 제정
 보건복지부·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한국기자협회 제정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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