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전쟁, 경제 아닌 정치만 배불린다[최종일의 월드 뷰]

본문 이미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상호관세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을 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2025.02.14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상호관세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을 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2025.02.14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쏟아진 속사포 행정명령으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내에선 연방공무원 대량 해고 칼바람이, 다른 나라들에선 관세가 진원지다.

벼르고 벼르던 중국 그리고 캐나다와 멕시코가 첫 대상국이 됐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협정이 트럼프 1기 때 체결됐지만 트럼프에게 성이 차지 않았는지 또다시 관세 카드를 들이밀었다.

조롱과 위협이 몇 차례 오간 뒤 이웃 동맹국 캐나다와 가장 가까운 파트너 멕시코엔 관세 부과가 한 달간 유예됐고, 중국 관세는 발효됐다. 중국은 "미국은 툭하면 관세를 수단으로 위협한다"며 곧바로 최대 15%의 보복관세로 맞대응했다.

다음 차례는 알루미늄과 철강. 미국행 모든 수입품에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다. 각국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까지도 두루 고려하겠다면서 '상호관세' 부과도 예고했다. 또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올봄에는 세계 어디를 가도 관세 폭탄 연기가 자욱할 것이다.

미국의 고압적인 일방주의 노선에 맞서 대거리해야 한다는 거친 언사가 몇몇 국가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한국을 비롯해 주요국들은 대체로 각종 선물 보따리를 안기며 협상의 문을 두드리려 하고 있다. 선물로는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 등 미국 에너지가 인기다. 농산물 수입 확대와 방위비 인상 카드도 나온다. 최대 14조 원어치 무기를 사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바람에 먼저 눕느라 바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관세는 트럼프가 '무역전쟁'에서 꺼내드는 '전가의 보도'다. 그는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여러 차례 말하며, 마치 사전에서 그 단어를 찾아내 세상에 알린 게 본인인 것처럼 얘기한다. 막강한 소비시장을 지녔기에 효력이 있는 무기다.

다들 궁금해하는 건 이 전략이 먹힐지 여부다. 미국으로 물밀듯 신규투자가 들어와 일자리가 크게 늘어 미국인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동시에 대규모 무역적자 문제가 해결되면서 경제엔 슈퍼 호황기가 찾아와 트럼프의 바람대로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되는 시나리오 말이다.

이번 관세전쟁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트럼프는 이미 한 차례 대통령(2017년 1월~2021년 1월)을 지냈다. 당시에 1930년대 이후 가장 큰 규모로 관세전쟁을 벌였다.

20세기 초에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민간연구기관인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무역 상대국 간에 팬데믹 직전인 2018~2019년 벌어진 무역전쟁의 정치적, 경제적 결과를 실증 분석한 보고서를 지난해 초 발표했다.

노동경제학 분야 석학인 데이비드 오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가 주 저자로 참여한 보고서의 결론은 "무역전쟁은 미국에 경제적 도움을 제공하지 않았다"였다.

보고서는 "미국의 수입 관세는 고용 측면에서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효과가 미미했다. 보복 관세는 고용에서 지속해서 악영향을 유발했고, 농업보조금은 역효과의 일부를 상쇄했다"고 설명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2020년 9월 보고서에서 관세 정책은 중국 그리고 캐나다·멕시코가 미국과 새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데 지렛대로 다소 작용한 점이 있지만, 이들로부터 미국에 요구에 부합하는 큰 양보를 이끌어내진 못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관세에 의존하려는 트럼프의 열망으로 인해 미국은 선호도가 떨어지는 무역상대국이 됐다고 비판했다.

무역 불공정 관행 척결과 함께 관세 부과의 중요 목적 중 하나로 여겨지는 무역적자 문제도 해결되지 못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2기 때 월간 기준으로 300억~400억 달러 수준에서 횡보했던 무역적자는 트럼프 집권 뒤 더욱 늘었다. 436억 달러로 시작해 퇴임 땐 620억 달러였다. 팬데믹 이전 시기를 기준으로 해도 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 관세 정책은 트럼프에게 남는 게 없는 장사일까. NBER의 논문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무역전쟁이 경제적으로는 효과가 미미했지만, 정치적으로는 효과가 있었단 점이다.

논문은 "무역전쟁은 공화당 지지를 강화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관세 보호 지역 즉, 수입 관세 부과로 지역 산업이 보호받는 곳의 주민들은 공화당 지지 성향이 더 강해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쓰고 있다.

또한 "보복 관세가 공화당 지지를 약화하는 것보다 수입 관세가 공화당 지지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더 컸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관세보호의 경제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지역 산업에 대한 관세보호 연장을 호의적으로 본다고 응답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미국 산업과 노동자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미국 국민들에게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것이 입증된 것이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미국인들의 일자리와 미국 제조업을 지켜내는 사람으로 인식됐다.

정책의 효과는 시기와 조건,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트럼프가 밀어붙이고 있는 이번 관세전쟁이 긍정적 성과를 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다만,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역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1기 때 인플레이션은 1% 후반에서 2% 초반이었지만 현재는 3% 수준으로 물가 압박이 상당히 고조돼 있는 상황 때문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전까지 대체로 고립주의 성향이 강했다. 경제력과 더불어 막강한 군사력을 통해 냉전 시기부터 전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군사력의 바탕은 탄탄한 동맹 체계다. 기존 동맹 관계를 뒤흔드는, 관세 정책을 포함한 트럼프의 일방적 정책 노선은 미국의 오랜 외교·안보 전략과 배치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안보보좌관을 지낸 제이크 설리번은 2023년 10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동맹 체제를 "지정학적 복지"라고 믿었고, 이에 따른 동맹 훼손에 중국과 러시아는 환호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배제된 종전 협상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휴양지 개발 계획, 캐나다·덴마크·파나마에 대한 영토 확장 위협, 해외 지원·원조 중단 방침, 동맹·우방도 없는 관세 정책 등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잇속 챙기기와 동맹 흔들기, 새 국제질서 구축에서 1기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 내부적으론 당파적 정체성과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법적 의무를 우선하고 있는 컬트 정치가 펼쳐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을 무시하고 3기 도전 가능성을 시사하거나, 자신을 '왕'(King)이라고 칭하는 트럼프의 모습은 미국이 4년간 맞닥뜨릴 일의 예고편으로 읽힌다. 눈 비비고 다시 본다. 마가(MAGA)의 g는 gross(역겨운)가 아니라 great이다. 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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