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타닐 등을 문제 삼으며 멕시코, 캐나다,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왜 하필 펜타닐을 전면에 내세웠는지 관심이 일고 있다.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산 모든 수입품에 25%, 캐나다에는 25%(에너지는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중국산 수입품에는 기존 관세에 더해 10%의 관세를 추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펜타닐과 같은 불법 약물과 관련해 캐나다, 멕시코의 조치가 미흡하고, 중국은 펜타닐을 제한하는 조치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서에서 "나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불법 약물의 지속적인 유입이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생명을 위협하고, 의료시스템, 공공서비스 및 지역사회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음을 확인한다"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중국을 겨냥해 "그들이 엄청난 양의 펜타닐을 보내 매년 수십만 명을 죽였다"면서 미국의 접경국인 멕시코와 캐나다가 펜타닐의 미국 유입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관세의 명분을 언급했다.

이른바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미국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인 마약성 진통제로, 헤로인보다 최대 100배 더 강력한 합성 오피오이드다. 2022년 미국에서 보고된 약물 과용으로 인한 사망자 10만 명 중 약 7만 명이 펜타닐을 복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2023년 미국 18~49세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할 정도다.
통상 중국의 업자들이 멕시코로 전구체 화학물질을 운송하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펜타닐을 만든 뒤 국경 검문이 느슨한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간 미국 정부는 중국에 펜타닐 대응에 있어 협력을 요구해 왔다. 이에 중국 정부는 펜타닐 원료를 만드는 화학회사를 직접 단속하기로 했다.
멕시코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따라 펜타닐 문제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펜타닐 거래에 연루된 범죄 조직을 단속하는 데 있어 전임자들보다 훨씬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고 4개월 동안 멕시코 보안군은 펜타닐을 대량으로 압수하고 펜타닐 실험실을 찾아내 소탕하는 작전을 진행했다. 멕시코 보안군은 12월에만 1톤 이상의 펜타닐을 압수했다. 이는 2000만 회 이상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아울러 셰인바움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일 취임한 후 펜타닐 관련 범죄로 1만 명 이상이 체포됐고, 4개월간 90톤 이상의 약물을 압수했으며 139개 이상의 펜타닐 실험실을 적발했다.
이러한 조처들이 마약 카르텔의 생산 능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는 증거는 없지만, 멕시코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충족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멕시코 보안 분석가 에두아르도 게레로는 뉴욕타임스(NYT)에 "중요한 것은 멕시코가 더 열심히, 더 빨리 일하고 결과를 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펜타닐의 미국 유통에 연루된 국가들은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펜타닐을 콕 집어 관세 부과의 근거로 들었다.
다만 펜타닐은 관세의 명분일 뿐, 트럼프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약 유통 근절이 아니라 미국 제조업 부흥을 통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자 세계 마약 정책 전문가인 반다 펠밥-브라운은 "관세 부과는 펜타닐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펜타닐 유통을 막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지적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선임연구원 다니엘 물라니도 "마약 및 이민과 같은 관련 없는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비상권한을 사용하면 다른 수많은 것에 대한 대응으로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에서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3개국 간 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바꿨다.
멕시코에서 만든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조건으로 최저임금(시간당 16달러) 노동자 비중을 늘렸다. 임금이 저렴한 멕시코 노동자 대신 미국 노동자를 고용하라는 취지에서다. 또 북미산 부품 사용 비율도 62.5%에서 75%로 조정했다. 그동안 미국은 원산지 규정을 강화해 미국 내 자동차 공장이 멕시코로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비율을 85%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USMCA와 관련해 '덜 만족한다'고 언급한 만큼, 25% 관세 카드를 이용해 집권 2기에서도 협상안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더 나아가 도미니카 공화국-중앙아메리카-미국 자유무역협정(CAFTA-DR), 칠레, 콜롬비아, 파나마, 페루와의 자유무역협정 등도 줄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비영리 학술 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벌인 새로운 관세 전쟁은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무역을 무기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중국이 지정학적, 경제적 경쟁자로 부상하면서 필수 산업을 미국으로 다시 유치하고, 국내 일자리를 보호하고, 외국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며 "트럼프의 단기 목표는 관세를 다른 관할권으로부터 양보를 확보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