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생전 극명하게 이견을 빚었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시간)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이 각각 가톨릭 교회와 미국 정치를 자신들과 같은 비주류 이미지로 재편했지만 정작 두 사람의 관계는 충돌뿐이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세상이 전쟁, 빈곤, 기후변화, 대량 이민으로 혼란한 지난 10년 사이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교황은 2013년 즉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미국 백악관에 처음 입성했다.
이들 모두 개인적 카리스마로 권력을 변혁적 방식으로 행사하며 가톨릭 교회와 미국 정치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겉모습부터 가치관까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교황은 전통적인 빨간 구두와 호화로운 사도궁을 버리고 바티칸 경내 게스트하우스에서 검소한 삶을 살았다.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시 고층 건물부터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의 손에 닿는 온갖 것들을 금으로 장식해 놨다.
이들의 차이점은 여러 현안을 둘러싼 견해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이나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민 문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 차단과 이민자들의 범죄화에 앞장서고 있다면 교황은 줄곧 이민자에 대한 연민과 보살핌을 강조했다.
교황은 생전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이 "인간과 가정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공약에 대해 "기독교인이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맞받았다. 그는 교황의 주장이 '부끄럽다'며 바티칸이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 세력 IS 공격을 받는다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으면'하고 기도할 것이라고 조롱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은 트럼프 집권 1기 바티칸에서 딱 한 차례 만났다. 당시 촬영한 사진에서 활짝 웃는 트럼프 대통령과 엄격한 표정의 교황이 상반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기조를 선종 몇 달 전까지도 강하게 비판했다. '멕시코 국경에서의 이민자 부모·아동 분리 정책은 부도덕', '스스로 세운 장벽의 포로가 될 것' 등 거센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황이 선종하기 전 마지막으로 맞이한 손님은 트럼프 행정부의 JD 밴스 부통령이었다. 교황은 20일 거처에서 이탈리아를 방문한 밴스 부통령을 만나 부활절 인사를 건넸다.
밴스 부통령과 면담 몇 시간 후 교황은 부활절 강복을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로 향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의 생전 마지막 메시지가 된 강론을 그의 보좌관이 대독했다.
"취약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 이민자를 향한 경멸이 얼마나 자주 불러일으켜지는가!" 교황은 이튿날인 21일 오전 선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의 선종에 "세상을 사랑한 좋은 분이었다"고 짧게 언급했다. 또 '존경의 표시'로 백악관 등 미국 정부시설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그는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교황의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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