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픔이 바로 나의 것'…교황 가족도 이탈리아판 비극 겪었다

교황 자서전 '희망' 프롤로그에서 침몰선의 비극 담아

본문 이미지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카 퍼레이드 도중 오픈카에서 내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34일째 단식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47)씨를 위로하고 있다.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2014.8.16/뉴스1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카 퍼레이드 도중 오픈카에서 내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34일째 단식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47)씨를 위로하고 있다.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2014.8.16/뉴스1

"마팔다호는 1천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고 이탈리아를 떠났네. (…)부모들은 파도 속으로 사라져가는 자녀들을 껴안았네."('희망' 프롤로그 중에서)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1일(현지시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서전 '희망'에서 '이탈리아의 타이태닉'으로 불렸던 한 침몰선의 비극이 책 가장 앞에 언급되어 교황이 세월호 유족의 슬픔과 고통을 얼마나 깊이 공감했을지 짐작되고 있다.

올해 3월 출간된 '희망'은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인 프란치스코 본인이 직접 집필한 첫 공식 자서전으로 교황의 삶이 어땠으며 그 뿌리가 무엇인지 담고 있다. 이 침몰선에 대한 이야기는 책 프롤로그 전부에 할애됐다.

교황의 조부모와 청년 시절의 교황의 아버지는 이 배를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위해 탈뻔했지만, 자산을 처분하지 못해 못 탔다. 1200명이 넘게 타고 있던 마팔다호는 60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남미 언론들은 보도했는데, 교황은 "나는 이 배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다"고 썼다.

교황 가족의 목숨을 잃게 할 뻔했던 이 배는 20세기 초 이탈리아 상선의 자랑이던 원양 여객선이었다. 하지만 제1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오랫동안 방치되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습 때문에 나중에는 '발레리나'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낡은 배였다.

유명 인사들이 타던 초기와 달리 침몰 당시는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향하던 이주민들이 탔다. 생존자들의 말에 의하면 배는 좌현 엔진 프로펠러와 축이 완전히 빠져나가 선체에 깊은 균열을 내면서 배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며 침몰했다.

배 보일러 폭발 위험이 있어 다가온 배들도 구조에 나서지 못하고, 배가 너무 기울어 구명정도 선체에 부딪혀 바다로 가라앉고, 물에 빠진 사람에게는 상어가 달려드는 참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교황의 마음에 남은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죽음도 삼켜버리지 못한 희생정신과 인간의 존엄함이었다. 한 청년은 수십명을 구조한 후 바다로 뛰어들 차례를 기다리다가 수영도 못하고 구명조끼도 못 얻어입은 한 노인을 발견했다. 청년은 노인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입히고 같이 뛰어들어 구명정까지 데려다주었지만 정작 본인은 상어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선장은 배에 끝까지 남았고 함께 남아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이탈리아 국가를 연주하도록 해 배는 국가와 함께 가라앉았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 여러 발의 총성도 들렸다. 승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마친 장교들이 총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단한 것이었다.

본문 이미지 -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에게 세례성사를 하고 있다. 이 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로 정해졌다. (이호진씨 페이스북) 2014.8.17/뉴스1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에게 세례성사를 하고 있다. 이 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로 정해졌다. (이호진씨 페이스북) 2014.8.17/뉴스1

교황은 "제 조부모님과 그분들의 외동아들, 곧 훗날 제 아버지가 될 청년 마리오는 1927년 10월11일 제노바 항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출항할 그 배의 표를 구입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 배를 타지 못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제가 얼마나 많이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를 드렸는지 상상하지 못하실 것이다"라고 했다.

교황은 2014년 8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후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노란 리본을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달았는데 정치적 중립을 위해 노란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는 단호하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며 거절했다.

이탈리아를 떠나 아르헨티나를 향해 꿈을 안고 떠났지만, 불귀의 객이 된 이주민들의 비극이 세월호와 겹쳐 보였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동안 틈나는 대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에 앞선 카퍼레이드에서는 광화문 광장 끝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 차를 멈추게 한 뒤에 차에서 내려 단식중인 김영오 씨의 두 손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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