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신태용 전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은 'K리그의 전설'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라운드의 여우'였고 적어도 대한민국 프로축구 역사 속에서는 그를 능가하는 미드필더를 찾기 어렵다.
1992년 신인왕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2004년 은퇴할 때까지 13시즌 동안 405경기에 출전해 102골 69도움을 기록했다. K리그 역사상 최초의 60(골)-60(도움) 클럽 가입자다.
상복도 많았다. 성남(일화) 시절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연패 그리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3연패 등 숱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5년과 2001년 MVP를 2차례나 수상했으며 지난 2023년 프로축구 40주년을 기념하는 'K리그 명예의 전당'에서는 최순호(수원FC 단장), 홍명보(A대표팀 감독), 이동국(전 전북)과 함께 선수부문에 헌액됐다.
지도자로도 승승장구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감독으로 성남을 이끌면서 2010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11년 FA컵(現 코리아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 무렵 붙여진 수식어가 '난놈'이고 당시 지도력을 인정받아 U20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등 '국대 사령탑'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를 오직 '성남' 구단에서만 작성했으니 '원클럽맨 레전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그렇게 성남과 연이 깊은 신태용 감독이 다시 친정을 위해 팔을 걷었다.

성남 구단은 16일 오전 "구단의 레전드 신태용 전 인도네시아 감독을 올해 말까지 비상근 단장으로 임명했다"고 알렸다. 깜작 발표였다.
신태용 단장은 구단을 통해 "내게 성남FC는 특별한 팀이다. 구단 역사를 봤을 때 지금의 위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성남이 승격을 넘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갈 수 있도록 구단과 선수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날 오후 전화 연결된 신태용 단장 주변은 시끌시끌했다. 그는 "성남이랑 선문대의 연습경기 하는 곳에 나와 있다"고 했다. 구단 보도자료가 오전에 배포됐는데 오후에 곧바로 경기장에 나왔으니 그야말로 '즉시 행보'다.
성남은 현재 '2부리그'인 K리그2에 있다. 한때 '지는 법을 모른다'던 명가였는데 지금은 2부리그에서도 경쟁이 힘겹다. 2022년 2부로 다시 강등된 성남은 '곧바로 승격'을 외쳤으나 2023년 K리그2 9위에 그치더니 지난해에는 최하위(13위)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지난해 9월 대행으로 선임돼 올 시즌을 앞두고 정식 지휘봉을 잡은 전경준 감독 체제에서 성남은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7경기를 치른 현재 4승3무(승점 15) 무패로 인천(5승1무1패 승점16)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아직 초반이기는 하지만 고무적인 페이스다. 신태용 단장은 여기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역할이다.

K리그2 수준이 녹록지 않고 승격은 정말 쉽지 않다는 말에 신 단장은 "지켜보시라. 이제 곧바로 올라갈 것"이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괜히 말을 돌리거나, 우는 소리로 도망칠 구석을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난놈' 신태용은 달랐다. 그는 "팀에 들어와서 보니 단단하게 잘 준비하고 있다.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했다.
올해 초 인도네시아축구협회의 비상식적인 '해임 결정' 후 한동안 조용히 보내던 그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4기 집행부에 합류하는 등 다시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대외협력을 담당하는 부회장으로 선임돼 '새로운 축구협회'에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원래 백수가 더 바쁜 법"이라면서 특유의 넉살과 함께 웃은 그는 "대한축구협회가 새롭게 태어나려는 시점에 부회장을 맡게 됐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대외협력 부문인데,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어 그는 "축구협회가 최근 축구팬들의 많은 질타를 받았는데,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달라지려 애를 쓰고 진짜 달라진다면,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조용히, 부지런히 내 역할을 하겠다"고 각오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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