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뉴스1) 이상철 기자 =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적 선수로 활약했던 박정은(48)이 지도자가 된 뒤에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여자프로농구 막내 구단 부산 BNK를 정상으로 이끌며 전인미답의 '여성 우승 사령탑'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박 감독이 지휘하는 BNK는 20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5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5전 3선승제) 3차전에서 아산 우리은행을 55-54로 꺾고, 시리즈 전적 3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019년 창단한 BNK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시즌 최하위까지 추락했던 팀은 단 1년 만에 정상을 밟았다.
특히 박 감독은 여성 지도자 최초로 여자프로농구 우승 사령탑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그에 앞서 이옥자 전 KDB생명 감독과 유영주 전 BNK 감독, 2명의 여성 지도자가 여자프로농구 무대에서 남성 지도자와 지략 대결을 펼쳤지만 둘 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전 감독과 유 전 감독은 우승은고사하고 포스트시즌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그런 환경에서 박 감독은 '여성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삼성생명 레전드' 박정은, 고향 부산 연고 BNK 지휘봉 잡다
창단 후 첫 두 시즌에서 6개 팀 중 5위와 6위로 하위권을 맴돌던 BNK는 2021년 3월 제2대 사령탑으로 '부산 출신' 박정은 감독을 선임했다.
상당히 파격적인 부임이었다. 박 감독은 삼성생명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1994년 용인 삼성생명에 입단해 19년 동안 간판으로 활약한 뒤에는 코치로 3년을 더 몸담았다.
WKBL에서 행정 경험을 쌓다가 현장으로 돌아온 박 감독은 부임 첫 시즌에 모래알 조직력을 보였던 팀을 탈바꿈시켜 정규리그 4위(12승 18패)로 창단 첫 '봄 농구'를 이끌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쓴맛을 봤지만, 다음 시즌에는 정규리그 2위(17승 13패)와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박 감독은 이 같은 전리품을 앞세워 2025-26시즌까지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위대인' 위성우 감독과의 지략 대결서도 완승
비록 2023-24시즌에는 주축 선수의 부상 등으로 13연패를 당하는 등 최하위(6승 24패) 수모를 당했지만, 박 감독은 빠르게 팀을 재건했다. BNK는 '베테랑' 박혜진과 김소니아가 합류하면서 선수층이 더더욱 화려해졌는데, 박 감독이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박 감독은 2024-25시즌 후반기 들어 박혜진과 이소희의 부상 이탈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팀을 정규리그 2위(19승 11패)로 이끌었다. 19승은 BNK의 단일 시즌 정규리그 최다승 기록이다.
그리고 박 감독은 자신의 세 번째 포스트시즌에서 '우승 감독'이 됐다. 8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한 '위대인'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과 지략 대결에서도 완승했다. 그는 화끈하고 다양한 공격 전술을 준비해 위 감독이 짜놓은 수비를 무너뜨렸다.
박 감독은 4시즌 동안 BNK를 '신흥 강호'로 만들었고, 여성 지도자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그는 자신이 잘해야 더 많은 여성 지도자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고 누차 강조했는데, 그 사명을 보란듯이 이루어냈다.
다음 시즌에는 여성 지도자끼리 지략 대결도 펼쳐질 전망이다. 박 감독이 만든 성공 열매를 보고 인천 신한은행이 최윤아 감독을 선임한 것. 박 감독이 바라던 또 하나의 소망이 이뤄졌다.
rok195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