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최근 의대 정원 증원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 보이지만, 정작 한국 사회가 오랜 기간 해결하지 못했던 지역별 의료 격차와 필수 의료 분야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려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는 하지만, 그 실행 방식과 과정이 의료계와의 갈등으로 번번이 좌초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의미 없는 정치적 공방에만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지역 의료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지역 우수인재 쿼터제'와 장학금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호주 정부가 운영하는 'Bonded Medical Program'이 대표적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시드니나 멜버른 등 대도시가 아닌, 호주의 농어촌·오지에서의 의료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즉 학생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졸업 후 일정 기간 농어촌·오지에서 근무할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의료 취약지에 의료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정책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의사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호주처럼 지역 우수인재를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졸업 후 일정 기간 지역 내 공공의료기관이나 필수 의료 분야(예: 외과, 산부인과 등)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지역 의료 공백과 특정 분야 인력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려서 부족 문제를 해결하자"는 정부의 방식보다 훨씬 정교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접근이 지속 가능한 지역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핵심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농어촌 전형이나 지역인재 전형을 통해 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우선 입학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규모나 지원 내용이 매우 제한적이며, 졸업 후 해당 지역에 반드시 남아야 하는 의무 조항도 약하거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방의료 붕괴와 필수 의료 분야(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중증외상센터 등)의 인력 부족이다. 정부가 지역인재 전형 규모를 더 확대하고, 장학금 지급과 졸업 후 일정 기간 해당 지역이나 특정 분야에서 봉사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체계적으로 구축한다면, 지역 의료 인프라 강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의대 정원 확대 자체만 놓고 보면, "의사가 충분히 늘어나면 자동으로 지방과 취약 분야 인력도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경험적으로나 통계적으로 볼 때, 단순 정원 확대만으로는 필수 의료 분야나 농어촌 지역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사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대다수 의사는 경제적 보상과 교육·연구 환경이 더 우수한 수도권 종합병원이나 인기 진료과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의 '지역 쿼터'와 '필수 의료 분야 쿼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그에 대한 장학금이나 인센티브를 명확히 설정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호주도 Bonded Medical Program을 통해 졸업 후 일정 기간 지역·농어촌·오지의 의료기관 근무를 의무화함으로써 해당 지역의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의사 선발 기준을 기존의 '최상위 성적' 중심에서 조금 더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의과학자나 연구직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일선에서 진료하는 임상의사의 역할은 반드시 '상위 1%의 시험 성적'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을 지닌 이들에게 더 적합하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심리·정서적 안정을 주는 의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성적만 뛰어난 사람이 환자와 공감하지 못하고, 지역에 대한 관심이나 책임감이 없다면 결국에는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거나 인기 과만을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호주의 Bonded Medical Program은 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 봉사활동, 리더십, 협업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발한다.
또한 졸업 후 일정 기간 해당 지역 공공병원이나 클리닉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두고, 불이행 시 장학금 일부를 반환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이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정착하도록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지역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충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물론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의료계 내부에서 "자율성을 침해한다"라거나 "좋은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기피할 것" 등의 우려가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단순히 '전문직의 자율성'에만 의존하기에는 너무나 절박한 상황이다.
지방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는 산부인과가 없어 임산부가 원정 출산을 가야 하고, 중증 응급환자가 인근 지역에서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의료인의 '전문가적 소명'을 훼손하는 일 아닐까.
다만 정부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할 때, 의료계가 느끼는 부담과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보상책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지역 공공병원 근무 기간 임금이나 의료장비 지원, 연구·학술 활동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지역에 남으면 손해 본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나아가 중증 외상, 응급의료,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진료과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더욱 두텁고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결국 지역별 의료 격차와 필수 의료 분야 인력 부족 문제의 해법은 의대 정원을 무턱대고 늘리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선발·육성하고, 그들이 지역에 안착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지역 우수인재 쿼터제와 장학금 제도, 필수 의료 분야 근무 의무화 등 '근본적이면서도 실효성 있는' 대안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회적 논의를 진행해야 할 때다. 천재적인 두뇌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희생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지역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한국 사회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제껏 우리가 풀지 못했던 의료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