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거(필로폰을 뜻하는 은어) 어디 있어."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 지난해 8월 22일 새벽 6시쯤 서울 동대문구 한 빌라의 층마다 배치된 화재경보기가 뜯겼다. 경보기를 급하게 뜯고 있는 건 대학생 우 모 씨(당시 25세)였다.
우 씨가 멀쩡한 화재경보기를 뜯은 이유는 숨겨져 있는 필로폰을 찾기 위해서였다. 우 씨는 공동 현관문 옆에 기재돼 있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 경보기 뚜껑을 훼손했다.
우 씨는 4시간가량 지난 오전 10시 30분쯤 또 다른 빌라에 들어가 다시 화재경보기를 뜯었다. 그렇게 빌라 2층부터 6층까지 벽면에 붙어있던 화재경보기가 훼손됐다.
우 씨가 필로폰을 찾기 위해 주택가 빌라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우 씨는 5일 전인 17일엔 서울 관악구 소재의 한 빌라를 찾았다. 텔레그램에서 연락한 마약 판매상이 1층 배전함에 숨겨둔 필로폰을 수거하기 위해서였다. 우 씨는 0.5g의 필로폰을 25만 원에 구매했다.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해 온 우 씨는 필로폰을 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우 씨는 같은 해 7월 앱을 통해 필로폰을 제공해 줄 사람을 구했다. 필로폰을 지칭하는 은어인 '시원한 X'를 이용해 마약 구매 글을 다수 올렸다.
화재경보기를 뜯은 날엔 이미 새벽 1시쯤 텔레그램을 통해 연락이 닿은 마약 판매상으로부터 필로폰 약 0.2g을 무상으로 건네받은 상태였다. 마약 판매상들은 필로폰을 무상으로 제공한 뒤, 중독 증세를 보이면 더 많은 양의 필로폰을 사게 하는 방식으로 판매를 이어간다.
우 씨는 필로폰을 갖게 된 날이면 근처 모텔을 찾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필로폰을 물로 희석해 혈관에 주사했다.
우 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서울 종로구 한 모텔에서 앱을 통해 알게 된 B 씨에게 필로폰을 매도하기도 했다. B 씨는 우 씨와 모텔에서 만나기 전 "물건은 좀 더 챙겨줘. 거래는 깔끔하게"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우 씨는 "당연하지"라고 답한 뒤 오후 10시쯤 필로폰을 건넸다.
필로폰을 투약한 B 씨는 우 씨에게 약을 좀 더 맞고 싶다고 요청했다. B 씨는 우 씨에게 50만 원을 이체했고, 우 씨는 가지고 있던 필로폰 0.05g이 담긴 주사기를 줬다.
우 씨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재물손괴, 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북부지법 형사7단독 김선범 판사는 우 씨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보호관찰과 200시간의 사회봉사, 40시간의 약물 치료 강의 수강을 명했고, 78만 원을 추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모발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고, 건조물 침입 및 재물 손괴 범행의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면서도 "피고인이 단약의 의지를 보이고 있고, 수사 과정에서 자신과 관련 있는 마약 사범들을 제보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