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군 내부에선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라는 반응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이어져 온 군 수뇌부 인사 공백은 6월 3일 대통령 선거 이후엔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군 지휘부의 공백은 앞으로 두 달가량 감내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당장 군이 직면한 최대 현안은 '트럼프 맞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군의 한 인사는 "탄핵이 기각될 경우엔 현재 재판을 받는 군인들의 판결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고, 심지어 윤 전 대통령 측에 의해 고발된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에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이었다"라며 "반대 경우에도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모두들 조심스러웠다"라고 탄핵 국면을 속 분위기를 전했다.
비상계엄 여파로 현재 대리·대행 체제인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특수전사령관, 정보사령관, 방첩사령관 등의 자리는 대선 이후 제대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 군 수뇌부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에 속하기 때문에, 현재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행사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선 이미 주요 보직을 둘러싼 물밑 작업이 시작됐다. '누구의 사람인가'라는 타이틀이 고위급 인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하면, 윤 전 대통령 시절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았던 장성들은 앞으로 기회를 덜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정치적 중립을 유지했거나 비상계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장성들은 인사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인은 정치에 개입하거나 휘둘리지 않는 게 상식이어야 한다지만, 현실에선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라인'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고위급 장성들은 능력보다는 정책 노선, 정치권과의 거리 등의 요소가 감안돼 중용 여부가 결정됐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인사들에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비상계엄을 육사 출신들이 주도했다는 점도 있지만, 과거 정권에서 육사 출신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전례도 있어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에선 육사 출신들이 군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비판이 야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제기돼 왔다. 차기 정권의 국정 기조가 '군에 대한 문민 통제 강화' 또는 '군 개혁' 쪽으로 기울 경우, 육사 폐지 혹은 개편 논의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군 소식통은 "육사 폐지론은 반복해서 등장했던 이슈지만 이번엔 정말 다를 수 있다는 인식도 감지된다"라며 "차기 수뇌부 인사에서 비육사 출신들의 약진이 이어질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우리 군이 당면한 과제는 인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한미동맹의 가격표가 다시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 대행과의 통화 내용을 전하며 "우리가 한국에 제공하는 막대한 군사 보호에 대한 지불을 얘기했다"라고 적었다. 상호관세 등 경제 현안과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인상 문제를 연계해 풀어나가겠다는 뜻으로,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인상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9년 한국과 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을 진행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5배가량 인상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외교가와 군 안팎에선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SMA가 행정협정에 속해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협정 무효화를 선언할 수 있는 셈이다.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주무부처는 외교부이지만, 협상 과정에 깊게 개입하는 국방부 역시 고민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변경할 수 있다는 우려도 군의 입장에선 중대 현안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최근 미 국방부에 공유한 새 방어 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 미 본토 방어 등을 국방부의 최우선 임무로 정했다. 북한 등의 '지역에서의' 위협 억제 역할은 대부분 동맹국에게 맡기겠다는 계획이다.
8일(현지시간) 미 연방 상원의 인준 절차를 통과한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 후보자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강조해 온 인물이다. 그의 부임은 주한미군의 역할 범위를 동맹국인 한국을 지키는 것을 넘어 대만해협 위기 대응 등으로까지 확대하려는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을 나오게 한다.
이와 관련 우리 군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 게 주한미군의 가장 큰 역할이고 그것이 변함이 없다"라는 원론적인 입장 외에 특별한 대비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고민을 하겠지만, 조야의 우려보다 더 빠르고 선명한 대응 전략을 준비한 뒤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것은 이제 시대가 부여한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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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