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최근 '북한 인권' 문제가 다뤄지는 주 무대는 '전장'이다.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 드론을 통한 전단(삐라) 살포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십년 간 북한 내부에 정체된 시선이 불과 몇 달 사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싸우고 있는 현장으로 빠르게 옮겨졌다.
전장에서의 전단 살포는 적군의 항복을 유도하는 일종의 '심리전'이다. 북한군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전단은 여기에 더해 북한 당국의 실상을 알리는 창구이자 군인 자신도 생명을 지킬 기회가 있다는 기본 인권 개념을 전달하는 용도로 제작되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뉴스1 본사에서 만난 이성민 휴먼라이츠재단(인권재단·HRF) 한국 국장은 지난달 20일부터 쿠르스크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원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하며 인권 단체로서는 최초로 북한군 시신에서 나온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과 '인권'은 이질적인 주제가 아니지만, 그간 다뤄진 북한 이슈에서 '파병된 북한군의 인권'이 지금처럼 주목받은 적은 없었다. HRF도 북한과는 별개로 러우전쟁 발발 초기부터 진행해 온 인도주의적 물자 지원이 이번 우크라이나군과의 정보 협업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이 국장은 설명했다.
HRF는 폐쇄된 사회, 독재 국가 등 억압받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권 활동가들에게 법률, 교육 지원 등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다. 세계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 만큼, 북한군의 파병 소식을 일찍이 접하며 상황을 주시해 왔고 본격적으로 연락을 취한 것은 지난달 20일부터였다.
이 국장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특수부대는 시신 회수 임무를 맡은 북한 군인들이 전단과 직접 접촉할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을 해둔다. 그들이 총격전이 벌어진 장소에 도착하기 전 북한군 시신에 자체 제작한 전단지를 고정해두거나 눈에 띄도록 시신 주변에 뿌린다. 이들이 확보한 북한군의 소지품은 이런 과정 중에 수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재단 측이 우크라이나군에 지원하고 있는 것은 소지품에 등장한 문화어(북한어)의 해석과 분석이다. 이 국장이 공개한 자료는 '94여단의 전투 경험과 교훈', '러시아 공수부대 본부 사령관과의 영상회의'라는 제목의 문서 등인데, 이는 그들이 경험을 통해 정리한 실패담과 전술 개선 방향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기서 그는 전쟁에서 군인의 일과 인권 활동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구분되지만 분명히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 북한군이 어떤 나라를 대상으로 누굴 위해 싸우는지, 왜 잘못된 것인지 객관적인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군인이 투항하면 배신으로 보지만 사실 인권의 관점에서는 그걸 선택할 수 있다는 항복한 군인(포로·POW)의 권리를 알리는 데 저희의 역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국장은 이번 북한군 시신에서 확보한 문서를 통해 전장에서 정보 격차의 문제가 만연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러시아 항공 특전사령부 사령관이 전쟁 개시 때부터 파악한 우크라이나 군의 전략과 전법, 사용 무기, 최근 전장에서 목격된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행동, 미국이 제공한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이 '러시아 공수부대 본부 사령관과의 영상회의'라는 문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이 영상이 북한의 고위급 정치 군인들에게만 공유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생포된 북한군 두 명의 진술을 비교하면 해당 문서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전쟁의 이해도의 갭이 큽니다. 불과 몇 달 전의 전황을 기록한 증거물인데 (생포된) 일반 병사들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보 공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북한 일반 병사들은 값싼 대가를 치르며 희생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제공한 정보만으로 전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보긴 어렵지만, 군내 정보 전달 및 소통의 어려움이 있다는 정황들이 보인다는 설명이다. 다른 문서에서는 부상 군인을 후송하는 데 교신 속도가 느려 10시간 이상 동료를 기다리는 사례, '포사격으로 생긴 구덩이에는 다시 폭탄이 안 떨어진다' 등 현대 전투에 적용할 수 없는 고전적 전투 경험들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사전에 교육을 받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전에서는 적용이 어려웠을 가능성도 있지만, 결국 북한군들이 목숨과 맞바꾼 경험을 터득하며 현대전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 이 국장의 분석이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보(공유)의 양방향성'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중요한 첫 스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입수한 문서를 보도한 'NK인사이더'가 출범한 이유이기도 하다. HRF는 지난해 1월부터 탈북민들이 북한에 대한 뉴스, 이슈 분석, 의견을 직접 게재할 수 있는 자체 매체를 만들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 출신인 이 국장은 2009년 탈북한 이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정치학, 국제관계학을 이중 전공했다. 그는 재학 시절부터 북한 당국의 성과만 선전하는 관영 매체가 아닌 주민들의 진짜 목소리를 외부에 전달해 주는 플랫폼이 생기길 바라왔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북한 인권을 다루는 일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어렵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북한과 같은 독재 국가들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문제에 침묵하면 국제사회가 그들을 포기하거나 인정했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는 것이다. 이 국장은 "잘못된 메시지를 북한 당국에 전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그들의 문제를 환기하고 각인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제 안보도 결국 '인권 유린'이라는 근본적인 바탕에서 문제가 야기된다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한 당국이 주민의 생활과 인권 보편적인 인권을 중시하고 존중한다면 지금처럼 막대한 자금을 군사 개발에 투자하지 않았겠죠. 그럼 대북제재를 받을 필요도 없고 경제도 향상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덜 도발적인 북한이 되지 않을까요? 안보와 인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겁니다."
HRF가 북한 정권의 선전에 대항하는 활동 지원을 해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단은 북한의 정보 장벽을 약화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실리콘밸리에서 100여 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활동가들이 참가하는 '해커탄'을 조직했다. 2016년에는 'Flash Drives for Freedom'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현재까지 북한 유입용으로 13만 7000개 이상의 이동식 저장 장치(USB)와 SD카드를 제작해 여러 지역 활동 단체들에 지원하고 있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