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한지명 기자 = 지난달 경북에서 발생한 초고속 산불은 시속 8㎞로 확산되며 안동에서 영덕까지 51㎞ 구간을 빠르게 번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 대피가 늦어져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러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5시간 내 대피' 기준을 포함한 주민대피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산불 예측정보와 대피 단계를 구체화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의 대책에 대해 현장 판단을 조율할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고령자나 취약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정보 전달 방식 등에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행안부는 전날 주민대피체계 개선안을 발표했다. 산불확산예측시스템은 최대순간풍속을 기준으로 화선 도달 시간을 계산해, 5시간 이내 지역은 '즉시 대피', 8시간 이내는 '사전 대피 준비' 구역으로 지정한다. 경북 산불 당시 시속 8.2㎞로 불길이 번졌던 사례가 기준으로 적용됐다.
대피는 '준비–실행 대기–즉시 실행' 3단계로 나뉘며 고령자나 장애인 등 교통약자에 대해서는 사전 대피와 차량 지원이 병행된다. 행안부는 경북 산불 당시 화선의 확산 경로와 속도를 제때 예측하지 못해 대피가 늦어진 측면이 있었다고 보고 개선안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산불 대피와 관련해 체계가 마련되고, 대피 단계를 구체화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이런 기준이 없어서 (재난) 문자도 늦게 보내고, 정보를 늦게 준다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체계가 생겼다는 점만으로도 개선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백민호 강원대 소방방재학 교수도 "시간 설정을 두고 대피에 여유를 두는 건 현명한 판단"이라며 "산불은 단시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 며칠씩 가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 개념을 함께 반영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만 산불의 특성상 고지대를 따라 번지고 바람 방향이 급변하는 등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단순한 대피 시간 기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건축물 화재는 평지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진압이 가능하지만, 산불은 전혀 다르다"고 꼬집었다.
또 "산림이 밀집된 고지대와 능선을 따라 확산되고, 바람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변수까지 작용하기 때문에 시간 기준만으로 대피를 설계하는 건 탁상행정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산불 대응을 지휘·조율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정태헌 경북도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피 기준이 생겼다면 그걸 누가 판단하고 집행할지까지 명확히 돼야 한다"며 "지자체 단위로 알아서 판단하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산불 관련 대응은 작전처럼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제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산림청, 지자체, 소방청이 따로 움직이면 결국 관여를 꺼리고 지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에서는 강풍 방향이 바뀌면 1차 대피소에서 2차 대피소로 전환하는 체계가 마련됐다"며 "사전에 반복적인 대피 훈련이 병행하지 않으면 문자나 경보 시스템만으로는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고령층이 집중된 지역에서의 화재 정보 전달 방식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손 교수는 "연세 드신 분들은 스마트폰에 능숙하지 않고, 가두방송은 차량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외진 곳에서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며 "이런 전달 방식만으로는 실제 대피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골짜기마다 마을 가구 수가 10~20개 있는데 이런 분들은 기동력이 없다"며 "마을회관으로 모이도록 안내하고, 이후 대피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사전에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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