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뉴스1) 김기현 기자 = 경찰이 '사업 실패'를 비관해 노부모와 처자식 등 가족 5명을 살해한 50대 남성에 대한 신상 공개를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가족 간 범죄'인 만큼 피의자 신상이 공개될 경우, 피해자 유족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과는 살인 및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인 A 씨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피의자 신상 공개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의 얼굴, 성명,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다.
범행의 잔인성·중대성,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는 증거 입증, 국민 알권리 보장 및 재범 방지·범죄 예방, 청소년이 아닐 경우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갖췄을 때 이뤄진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유족 등 의사를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며 "A 씨 신상을 공개할 경우, 피해자 유족까지 특정이 가능할 수 있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A 씨는 지난 14일 오후 용인시 수지구 소재 아파트에서 80대 부모와 50대 아내, 10~20대 딸 2명 등 5명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후 차례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다.
그는 범행 후 "가족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메모를 남기고 15일 오전 승용차를 이용해 광주 동구 소재 오피스텔로 도주했다가 같은 날 경찰에 붙잡혔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며 "아파트 분양과 관련한 사업을 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계약자들로부터 사기 분양으로 고소당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엄청난 빚을 지고 민사 소송까지 당하는 처지에 몰렸다"며 "가족들에게 채무를 떠안게 할 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유사 사건과 비교해 볼 때 A 씨 범행이 지나치게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사업 실패'가 유일한 범행 동기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선 경찰은 A 씨 조사에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그의 심리 상태와 경향 등을 분석하고, 보다 정확한 범행 동기를 파악할 계획이다.
다만 A 씨에 대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 검사 진행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A 씨가 체포 이틀 만에 구속되면서 일각에선 신상 공개 여부에 대한 여러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존·비속을 가리지 않고 가족을 5명이나 살해한,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히 신상 공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박 모 씨(29·수원)는 "가족에게 범행했다고 해서, 타인에게 범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당연히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비교적 최근 발생한 존·비속 살인 사건을 보면, A 씨 신상이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가능했다.
지난 2022년 10월 광명시 소하동 한 아파트에서 40대 부인과 9·13세 아들 등 가족 3명을 흉기와 둔기로 살해한 40대 B 씨 사례가 그렇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광명경찰서도 '가족 간 범행'인 점을 고려해 B 씨 신상 공개 여부를 검토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B 씨 신상 공개가 재범 방지 목적 등에 맞지 않고, 피해자가 가족인 점에서 덩달아 피해자 신상도 공개될 수밖에 없는 점을 우려해서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B 씨 신상 공개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고민이 있었다"면서 "피해자 권익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B 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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