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만만한 범행 대상 '여친'…숱하게 죽고 폭행 당하지만

목숨도 잃는 마당에…구속 수사율 2.2%
법적 안전망도 '미흡'…후속 법안 계류·폐기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지난해 5월 9일 60대 남성 A 씨는 경기 화성시 남양읍 전 여자친구인 60대 여성 B 씨 소유 2층짜리 단독주택에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B 씨는 뇌사 상태에 빠졌고, 결국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들은 과거 교제했던 사이로, A 씨는 '접근금지' 임시 조치 명령이 내려진 데 불만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시 조치 명령은 가정폭력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 심리가 이루어질 때까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취해지는 조치다.

그는 1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숨지게 하려고 주택에 불을 지른 것이 아닌, 피해자 재산에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였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거지 테라스를 예쁘게 꾸미고 같이 오래 살려고 했는데 나가라는 말 한 마디에 제가 나올 수 있느냐"며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고 싶었다"며 "돈은 돈대로 다 쓰고 얼마나 허망한가. 피해자도 그걸 느껴보라는 게 (범행) 목적이었다"고도 강조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에게 검찰 구형량인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 5년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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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매년 스토킹·교제폭력 등 '관계성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보복'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인식은 물론, 법·제도적 장치마저 미비해 관계성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는 만큼 이를 예방할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하루 평균 26건…"실제로는 더 많을 듯"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여자친구, 연인 등 대상 강력·폭력범죄는 2만 8527건이다.

하루 평균 26건씩 애인을 상대로 한 살인과 폭행, 협박, 감금 등 관계성 범죄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는 의미다.

이 중 2023년 주요 죄종별 발생 건수는 △살인기수 25건 △살인미수 등 23건 △방화 29건 △상해 1077건 △폭행 5104건 △협박 936건 등이다.

다만 관계성 범죄 발생 시 피해자가 대수롭지 않은 상황으로 치부하거나, 정에 사로잡혀 신고를 망설이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관계성 범죄가 통계보다 더 많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 추측이다.

목숨도 잃는 마당에…구속 수사율 2.2%

관계성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이미 맺어진 일정한 관계에서 반복되는 특성이 있는 범죄를 의미한다.

대체로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가 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지속될 확률이 높다.

특히 연인 관계일 경우에는 가해자가 피해자 주거지나 직장, 가족 등 여러 신상정보를 알고 있는 만큼 범행 우려가 매우 크다.

관계성 범죄가 발생하면, 무엇보다 가·피해자 분리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럿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구속 수사율은 낮은 수준이다. 2023년 기준 교제폭력 피의자 1만 3939명 중 2.2%에 해당하는 310명만 구속된 것으로 집계됐다.

법적 안전망도 '미흡'…후속 법안 계류·폐기

그럼에도 관계성 범죄를 억제할 법적 안전망은 여전히 미흡하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긴 관계성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후속 대책을 담은 법안이 꾸준히 발의되고 있으나 대부분 유의미한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 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선 데이트 폭력 처벌을 별도로 다루는 '데이트 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22대 국회 들어 발의된 △교제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례법안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처벌 강화 법안 역시 계류 중이다.

여기에 교제폭력 가해자에게 전자창지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 또한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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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거절 시 보호도 못 해…경찰 "한계 분명"

관계성 범죄를 다루는 현행 법률 가운데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상당수 살아 있는 점 역시 문제다.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기 위한 합의를 위해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등 관계성 범죄가 발생할 여지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경찰은 스마트 워치 지급이나 임시숙소 제공 등 피해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피해자가 거절할 경우에는 경찰이 강제할 수 없어 일각에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줄곧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보호 조치는 당사자 동의 없이 진행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그런데 보호 조치를 거절했던 피해자가 다시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가장 중요한 건 '관계 정립'…"사회적 논의도 시급"

결국 관계성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연인 간 관계 정립'이라는 게 전문가 조언이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연인과 이별할 때 '네가 나빠서'나 '내가 모자라서' 등 모욕이나 여지를 주는 말이 아닌, 아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가령 '난 더이상 네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이 마음이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게 핵심"이라며 "관계 회복을 원한다면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특히 관계성 범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라는 용어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 돼 가·피해자가 이를 저지르거나 당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처벌 역시 힘든 경우도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처벌이 능사가 아닌 만큼, 관계성 범죄 예방에 초점을 맞춘 법안 마련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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