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을사늑약을 옹호한 美 외교관을 징벌하다 [역사&오늘]

3월 23일, 장인환·전명운 스티븐슨 저격

본문 이미지 - 장인환(왼쪽)과 전명운 의사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장인환(왼쪽)과 전명운 의사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서 장인환과 전명운 두 의사가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을 옹호한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했다. 대한제국의 울분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다.

미국인 스티븐스는 대한제국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하며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망언을 일삼으며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특히, 휴가를 보내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인터뷰에서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옹호하고 을사늑약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여 재미 한인들의 공분을 샀다.

미국 교포들이 이 발언에 분개하고 시정을 요구하자 스티븐스는 한술 더 떠 "백성이 어리석어서 독립할 자격이 없으니 일본의 보호가 아니면 러시아에 빼앗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망언에 분노한 장인환, 전명운은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사건 당일 두 사람은 스티븐스가 페리 부두에 나타나자 그에게 총을 쏘았다. 전명운이 쏜 총은 빗나갔지만, 장인환이 쏜 3발 중 2발이 스티븐스 등에 명중했다. 스티븐스는 총을 맞은 후 이틀 후 사망했다.

교민들은 성금을 모아 미국인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승만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 살인범의 변호를 통역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에 유학생이던 신흥우가 통역을 맡았다. 두 사람이 공모를 한 것은 아니었다. 장인환 의사는 재판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교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2년 만에 석방됐다. 전명운 의사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이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은 대한제국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두 의사의 용기 있는 행동은 일본의 부당한 침략에 맞서 싸우는 대한제국 국민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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