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기원전 44년 3월 15일,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 사건은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로마 제정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카이사르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수완으로 로마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됐다. 그는 종신 독재관으로 임명되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이는 공화정을 지지하는 원로원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공화파 의원들은 카이사르의 독재를 종식하고 공화정을 회복하기 위해 암살을 계획했다.
암살자들은 원로원 회의에서 카이사르를 공격했다. 카이사르는 23군데에 자상을 입고 사망했다. 암살에는 그의 옛 연인의 아들 마르쿠스 브루투스를 비롯한 60여 명의 원로원 의원들이 가담했다. 카이사르가 죽기 직전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쳤다고 전해지지만, 이는 확실하지 않고 훗날 문학적 창작이 가미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카이사르 암살은 로마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암살자들은 공화정을 회복하려 했지만, 오히려 로마는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하여 암살자들을 처단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됐다.
카이사르의 암살은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로마 제정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로마 역사뿐만 아니라 이후 서양 역사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수많은 지도자가 등장해 제2의 카이사르를 꿈꾸며 정복 전쟁을 일으켰다.
카이사르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수완으로 로마를 변화시킨 영웅이지만, 동시에 독재와 권력 남용으로 공화정을 무너뜨린 폭군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의 삶은 권력과 이상, 영웅과 폭군이라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그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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