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가 원로 소설가 오정희씨(71)를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자, 문화예술인들이 오씨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시절 블랙리스트 실행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블랙리스트의 책임 규명이 공무원뿐만 민간인에게도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공동위원장 도종환·신학철) 민간위원인 김미도 서울과기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정희씨의 문학관추진위 위원 위촉을 반대했다. 김 교수는 "도종환 장관이 문학관추진위에 소설가 오정희를 위촉했다"며 "오씨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지내면서 블랙리스트 실행을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오정희씨는 '중국인 거리'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등의 작품을 남겨 한국 여성문학의 원류로 평가받는 문단의 원로다. 지난 24일 출범한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이하 '문학관추진위')는 2021년 개관을 목표로 주요 사항에 관한 자문을 위해 오씨를 비롯해 각계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됐다.
김미도 교수는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의에서 문학분야 소위원장인 오정희씨가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진상조사위는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의에서 심사위원들이 배제조치에 끝내 반발하자 예술위가 직접 작가 30여 명을 무더기로 배제하는 일에 (오정희씨가) 가담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진상조사위는 2017년 9월21일 열린 문학 분야 토론회에서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이 박근혜 정부 시절 문학계를 대상으로 한 대표적 블랙리스트 사례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사업은 애초 99명에게 1인당 지원금 1000만원씩을 전달하려 했으나 블랙리스트로 인해 29명 중 18명이 부당하게 배제됐다는 것이 진상조사위의 주장이다.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한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진 않았다.
김 교수는 이어 "도종환 장관은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의 인사 파문을 겪고도 자신이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진상조사위의 조사결과를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했다"며 "도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5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아르코문학창작기금' 검열문제를 제기했던 장본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원재 진상조사위 대변인은 이날 김 교수의 주장에 관해 공식 입장을 묻자 "오정희씨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30여명의 문인 배제 과정에 개입됐다"며 "당시 오정희씨는 블랙리스트 실행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적어도 이를 방조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다른 복수의 진상조사위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들도 뉴스1과의 통화에서 김 교수의 의혹 제기를 뒷받침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예술위 직원들은 당시 문학소위 위원장인 오정희씨에게 블랙리스트 명단을 보고한 뒤에 이들을 배제했다고 진술했다"며 "반면에 오씨는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문인들은 김 교수의 글을 SNS상에서 공유하면서 위촉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공지영 소설가는 "도종환 장관님 이건 참사 수준"이라고 했고, 송경동 시인은 "오정희씨는 문학계 블랙리스트 가장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자행된 시기에 이에 가담했다"며 "이런 의혹이 있는 문인을 문학관추진위 위원에 위촉했다는 사실이 암담하다"고 말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위원 선정에 있어 좀 더 신중한 검증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황규관 시인은 "오씨는 박근혜 정권 때 실질적인 부역자로 알고 있다"며 "일종의 탕평책을 쓴 모양인데 문학관추진위원 위촉을 철회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문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위원을 선임했으며 본인은 블랙리스트 개입 여부에 대해 부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진상조사위가 정식 권고안을 보내면 이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오정희씨에게 이번 위촉 논란에 관한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