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릉 인근서 출토된 부장품 백자 최초 공개된다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서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 특별전 개최
오는 21일부터 8월28일까지…조선왕실 국장서 쓰던 왕의 관도 최초 공개

<조선왕실 재궁(朝鮮王室梓宮)> 20세기 초, 나무, 220×67×67㎝. 국장(國葬) 시 왕의 시신을 안치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관으로, 왕의 관을 재궁(梓宮)이라고  한다. 재궁은 왕의 즉위 시에 제작하여 해마다 옻칠을 더해 사용하였는데, 이 재궁은 여분으로 만들어 보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덕궁 의풍각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을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한 것이다.(이하 제공 문화재청)ⓒ News1
<조선왕실 재궁(朝鮮王室梓宮)> 20세기 초, 나무, 220×67×67㎝. 국장(國葬) 시 왕의 시신을 안치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관으로, 왕의 관을 재궁(梓宮)이라고 한다. 재궁은 왕의 즉위 시에 제작하여 해마다 옻칠을 더해 사용하였는데, 이 재궁은 여분으로 만들어 보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덕궁 의풍각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을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한 것이다.(이하 제공 문화재청)ⓒ News1

&lt;정조 구릉지 명기&#40;正祖舊陵地明器&#41;&gt; 1800년, 도자기, 청동,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조&#40;재위 1776~1800&#41;가 승하하고 처음에 묻혔던 곳에서 출토된 명기&#40;明器&#41;이다. 정조의  능은 1821년&#40;순조 21&#41; 효의왕후&#40;1753~1821&#41;와 합장하면서 현재의 건릉&#40;健陵&#41;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2011년 발굴을 통해 융·건릉 경계 동남쪽에 위치한 구릉지에서 백자 명기와 칠기 함 등의 왕실 명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 중 &#39;건릉산릉도감의궤&#39;&#40;1800년&#41;의 기록에서 보이 는 경&#40;磬&#41;과 같은 악기와 보&#40;簠&#41;·궤&#40;簋&#41;·작&#40;爵&#41; 등의 제기&#40;祭器&#41; 명기는 사대부의 명기와 구분되는 왕실 부장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News1
<정조 구릉지 명기(正祖舊陵地明器)> 1800년, 도자기, 청동,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조(재위 1776~1800)가 승하하고 처음에 묻혔던 곳에서 출토된 명기(明器)이다. 정조의 능은 1821년(순조 21) 효의왕후(1753~1821)와 합장하면서 현재의 건릉(健陵)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2011년 발굴을 통해 융·건릉 경계 동남쪽에 위치한 구릉지에서 백자 명기와 칠기 함 등의 왕실 명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 중 '건릉산릉도감의궤'(1800년)의 기록에서 보이 는 경(磬)과 같은 악기와 보(簠)·궤(簋)·작(爵) 등의 제기(祭器) 명기는 사대부의 명기와 구분되는 왕실 부장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News1
&lt;철종국장도감의궤&#39;&#40;哲宗國葬都監儀軌&#41;&gt; 1865년, 4책, 종이에 먹과 채색, 45.0&times;31.5cm, 보물 제1901-3호. 1863년&#40;고종 즉위년&#41; 12월 8일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한 철종&#40;재위 1849~1863&#41;의 국장 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국장도감의궤이다. 국장의 진행 과정과 각 관청 간의 연계와 재정 의 출납, 인력의 동원과 사용한 제기 및 의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의궤는 총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채색 도설&#40;圖說&#41;과 반차도&#40;班次圖&#41;가 포함되어 있다.ⓒ News1
<철종국장도감의궤'(哲宗國葬都監儀軌)> 1865년, 4책, 종이에 먹과 채색, 45.0×31.5cm, 보물 제1901-3호. 1863년(고종 즉위년) 12월 8일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한 철종(재위 1849~1863)의 국장 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국장도감의궤이다. 국장의 진행 과정과 각 관청 간의 연계와 재정 의 출납, 인력의 동원과 사용한 제기 및 의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의궤는 총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채색 도설(圖說)과 반차도(班次圖)가 포함되어 있다.ⓒ News1
&lt;산릉도감 계회도&#40;山陵都監契會圖&#41;&gt; 1575년, 비단에 먹과 채색, 95.0&times;62.3cm, 충재박물관, 보물 제901호. 1575년&#40;선조 8&#41;에 제작된 명종비 인순왕후&#40;1532~1575&#41; 장례 당시의 산릉도감 관원의 계회도이다. 견본담채&#40;絹本淡彩&#41;의 족자로 상단에는 제목, 중단에는 안견&#40;安堅, 15세기 활동&#41;의  산수화풍의 계회도, 하단에는 도제조&#40;都提調&#41; 박순&#40;朴淳, 1523~1589&#41; 등 22인의 좌목이 있 고, 그림 왼쪽 여백에는 판서&#40;判書&#41; 정유일&#40;鄭惟一, 1533~1576&#41;이 짓고 쓴 제시&#40;題詩&#41;가 있 다. 권벌&#40;權橃, 1478~1548&#41;의 아들 동보&#40;東輔, 1517~1591&#41;가 당시 도감 계원으로 받아서 그 의 자손에게 전래한 것이다.ⓒ News1
<산릉도감 계회도(山陵都監契會圖)> 1575년, 비단에 먹과 채색, 95.0×62.3cm, 충재박물관, 보물 제901호. 1575년(선조 8)에 제작된 명종비 인순왕후(1532~1575) 장례 당시의 산릉도감 관원의 계회도이다. 견본담채(絹本淡彩)의 족자로 상단에는 제목, 중단에는 안견(安堅, 15세기 활동)의 산수화풍의 계회도, 하단에는 도제조(都提調) 박순(朴淳, 1523~1589) 등 22인의 좌목이 있 고, 그림 왼쪽 여백에는 판서(判書) 정유일(鄭惟一, 1533~1576)이 짓고 쓴 제시(題詩)가 있 다. 권벌(權橃, 1478~1548)의 아들 동보(東輔, 1517~1591)가 당시 도감 계원으로 받아서 그 의 자손에게 전래한 것이다.ⓒ News1
&lt;명릉도&#40;明陵圖&#41;&gt; 1757년 이후, 종이에 먹과 채색, 53.0&times;53.0cm. 숙종&#40;재위 1674~1720&#41;과 제1계비 인현왕후&#40;1667~1701&#41;,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40;1687~1757&#41;의 능을 그린 산릉도&#40;山陵圖&#41;이다. 마지막으로 승하한 인원왕후의 능 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1757년&#40;영조 33&#41; 이후로 추정된다. &#39;영조실록&#39;에 의하면  이미 제작된 &#39;명릉도&#39;가 궁중에 보관되어 있었고, 1754년&#40;영조 30&#41; 월성위&#40;月城慰&#41; 김한신&#40;金漢藎, 1720~1758&#41;이 그린 &#39;명릉도&#39;를 총 3본 모사하여 승정원, 예조, 관상감에 비치하게  했다고 한다. ⓒ News1
<명릉도(明陵圖)> 1757년 이후, 종이에 먹과 채색, 53.0×53.0cm. 숙종(재위 1674~1720)과 제1계비 인현왕후(1667~1701),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1687~1757)의 능을 그린 산릉도(山陵圖)이다. 마지막으로 승하한 인원왕후의 능 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1757년(영조 33) 이후로 추정된다. '영조실록'에 의하면 이미 제작된 '명릉도'가 궁중에 보관되어 있었고, 1754년(영조 30) 월성위(月城慰)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그린 '명릉도'를 총 3본 모사하여 승정원, 예조, 관상감에 비치하게 했다고 한다. ⓒ News1
&lt;정조 구릉지 출토 증옥&#40;贈玉&#41;&gt; 1800년, 옥, 국립문화재연구소, 길이 33.4cm, 너비 8.3cm, 두께 8.5cm, 무게 6.2kg 무덤에 함께 부장했던 옥돌로 묘주&#40;墓主&#41;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돌며  육면체로 제작되었다. ⓒ News1
<정조 구릉지 출토 증옥(贈玉)> 1800년, 옥, 국립문화재연구소, 길이 33.4cm, 너비 8.3cm, 두께 8.5cm, 무게 6.2kg 무덤에 함께 부장했던 옥돌로 묘주(墓主)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돌며 육면체로 제작되었다. ⓒ News1
&lt;술잔&#40;爵&#41;&gt; 조선, 놋쇠, 높이 22.3cm. 성종&#40;재위 1469~1494&#41;의 원비&#40;元妃&#41; 공혜왕후&#40;1456~1474&#41;의 왕릉인 순릉&#40;順陵&#41;에서 사용 였던 술잔 제기로, 몸체의 바닥에 ‘순릉&#40;順陵&#41;’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각종 제례와 궁 중에서 쓰는 술잔은 모양이 &#39;새&#39;&#40;작雀&#41;와 비슷하다 하여 &#39;작&#39;&#40;爵&#41;이라 부른다. ⓒ News1
<술잔(爵)> 조선, 놋쇠, 높이 22.3cm. 성종(재위 1469~1494)의 원비(元妃) 공혜왕후(1456~1474)의 왕릉인 순릉(順陵)에서 사용 였던 술잔 제기로, 몸체의 바닥에 ‘순릉(順陵)’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각종 제례와 궁 중에서 쓰는 술잔은 모양이 '새'(작雀)와 비슷하다 하여 '작'(爵)이라 부른다. ⓒ News1
&lt;향축궤&#40;香祝樻&#41;&gt; 조선, 나무, 26.4&times;36.0&times;8.7cm. 성종&#40;재위 1469~1494&#41;과 계비 정현왕후&#40;1462~1530&#41;의 왕릉인 선릉&#40;宣陵&#41;에서 사용하였던  향축궤로, 전면에 ‘선릉향축궤&#40;宣陵香祝樻&#41;’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향과 축문은 제례  때 신을 모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므로 이와 같은 향축궤를 별도로 만들어 보관하였다.  국왕의 친행 제례에는 행차 시에 향과 축문을 향축궤에 넣어 받들고 갔으며, 신하가 대행 하는 제사 때는 국왕이 별도로 향과 축문을 전달하는 의례를 통하여 제사를 위임하였다.ⓒ News1
<향축궤(香祝樻)> 조선, 나무, 26.4×36.0×8.7cm. 성종(재위 1469~1494)과 계비 정현왕후(1462~1530)의 왕릉인 선릉(宣陵)에서 사용하였던 향축궤로, 전면에 ‘선릉향축궤(宣陵香祝樻)’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향과 축문은 제례 때 신을 모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므로 이와 같은 향축궤를 별도로 만들어 보관하였다. 국왕의 친행 제례에는 행차 시에 향과 축문을 향축궤에 넣어 받들고 갔으며, 신하가 대행 하는 제사 때는 국왕이 별도로 향과 축문을 전달하는 의례를 통하여 제사를 위임하였다.ⓒ News1
&lt;제릉지&#40;齊陵誌&#41;&gt; 1936년, 6책, 종이에 먹, 28.4&times;20.3cm .태조&#40;재위 1392~1398&#41;의 원비&#40;元妃&#41; 신의왕후&#40;1337~1391&#41;의 능인 제릉&#40;齊陵&#41;에 대한 능지 로, 1936년 제릉 참봉 이병두가 옮겨 적은 책이다. 권1에는 제릉 참봉 이흡이 1782년&#40;정조  6&#41;에 쓴 서문이 있고, 각종 제례와 관련된 축식&#40;祝式&#41; 및 삽도, 절목&#40;節目&#41;, 사목&#40;事目&#41;, 죽책 문&#40;竹冊文&#41;, 옥책문&#40;玉冊文&#41; 등을 기록하였다. 권2에는 제릉과 예조 사이에 주고받은 문서를  기록하였고, 권3에서 권5까지는 1849년&#40;철종 즉위년&#41; 9월 23일의 기신제부터 1911년까지  관원들이 수향&#40;受香&#41;한 날짜와 능침의 수리 및 보수, 관리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권6 에는 1929년 이주황이 쓴 서&#40;序&#41;, 1928년에서 1930년까지 임명된 재관과 능침의 수리·보수  및 관리에 대해 기록하였다.ⓒ News1
<제릉지(齊陵誌)> 1936년, 6책, 종이에 먹, 28.4×20.3cm .태조(재위 1392~1398)의 원비(元妃) 신의왕후(1337~1391)의 능인 제릉(齊陵)에 대한 능지 로, 1936년 제릉 참봉 이병두가 옮겨 적은 책이다. 권1에는 제릉 참봉 이흡이 1782년(정조 6)에 쓴 서문이 있고, 각종 제례와 관련된 축식(祝式) 및 삽도, 절목(節目), 사목(事目), 죽책 문(竹冊文), 옥책문(玉冊文) 등을 기록하였다. 권2에는 제릉과 예조 사이에 주고받은 문서를 기록하였고, 권3에서 권5까지는 1849년(철종 즉위년) 9월 23일의 기신제부터 1911년까지 관원들이 수향(受香)한 날짜와 능침의 수리 및 보수, 관리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권6 에는 1929년 이주황이 쓴 서(序), 1928년에서 1930년까지 임명된 재관과 능침의 수리·보수 및 관리에 대해 기록하였다.ⓒ News1
&lt;영조가 각 능의 재관에게 내린 지침을 새긴 현판&#40;御製飭諭陵司齋官懸板&#41;&gt; 1755년, 나무, 44.0&times;101.0cm. 영조&#40;재위 1724∼1776&#41;가 1749년&#40;영조 25&#41; 5월 각 능의 재관&#40;齋官&#41;에게 사전&#40;祀典&#41;의 중요함 과 몸을 깨끗이 하는 일, 제기를 간수하는 일, 하인을 다루는 일 등을 유시&#40;諭示&#41;한 것이다.  서삼릉&#40;西三陵&#41;에 걸었던 것으로 이철보&#40;李喆輔, 1691∼1775&#41;가 글씨를 쓰고 1755년&#40;영조  31&#41; 10월에 판각되었다. ⓒ News1
<영조가 각 능의 재관에게 내린 지침을 새긴 현판(御製飭諭陵司齋官懸板)> 1755년, 나무, 44.0×101.0cm. 영조(재위 1724∼1776)가 1749년(영조 25) 5월 각 능의 재관(齋官)에게 사전(祀典)의 중요함 과 몸을 깨끗이 하는 일, 제기를 간수하는 일, 하인을 다루는 일 등을 유시(諭示)한 것이다. 서삼릉(西三陵)에 걸었던 것으로 이철보(李喆輔, 1691∼1775)가 글씨를 쓰고 1755년(영조 31) 10월에 판각되었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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