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의 라이벌 구도가 전통적으로 경쟁하던 가전뿐 아니라 B2B(기업간거래) 중심의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 냉난방공조(HVAC), 로봇 등 신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 대상의 가전 사업은 경기에 민감하고 중국 업체들의 공세로 경쟁도 치열한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B2B 사업을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과 LG전자 조주완 최고경영자(CEO)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강조하면서 양사가 부딪히는 사업 분야가 넓어지고 있다.
한 부회장은 지난해 9월 DX부문 출범 3주년을 앞두고 경기 수원시 본사에서 열린 사내 행사에서 "미래 성장을 위해 과감히 변화해야 한다"며 △메드테크(의료기술) △로봇 △전장 △친환경 공조 설루션 등 4가지 핵심 영역에서 신성장 사업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LG전자 역시 지난 2023년 가전에 머물지 않고 '스마트 라이프 설루션' 기업으로 도약해 2030년 매출 10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그 핵심이 B2B 영역 성장과 신사업이다.
조주완 CEO는 지난해 8월 비전 2030 선포 1주년을 맞아 개최한 인베스터 포럼에서 "높은 성장성과 안정적 수익 확보가 가능한 사업구조로의 변화를 추진해 LG전자의 가치를 보다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10~12일(현지 시각) 북미 최대 공조전시회 AHR 엑스포에 나란히 참가해 최신 HVAC 설루션을 선보였다. 양사는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IT 전시회 CES에서 대규모 전시장을 꾸리고 경쟁해 왔는데, HVAC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이런 구도가 AHR 엑스포에서도 재현되는 모양새다.
HVAC는 각국의 탄소중립 규제 강화, 발열량이 많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급증 등 친환경·고효율 공조 시스템 수요 증가로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에 생활가전을 담당하던 H&A사업본부 내 HVAC 사업부를 떼어 ES사업본부를 신설했고, 미국과 유럽에 각각 히트펌프 연구·개발(R&D) 거점을 설치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의 냉난방공조 기업 레녹스(Lennox)와 합작법인 '삼성 레녹스 냉난방공조 노스 아메리카'를 설립하고 미국 공조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기존 유통망에 레녹스의 유통망까지 판매 경로를 확대한다.
양사의 전장사업은 연간 10조 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핵심 사업이다.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EV)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이동하고,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자율주행화도 가속하면서 차량의 전장 부품 비율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013년 VS사업본부(당시 VC사업본부)를 신설해 본격적인 전장 사업에 뛰어들었고, 2018년에는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인 1조 4000억 원을 들여 자동차 헤드램프 제조사 ZKW를 인수했다. VS사업본부는 9년 연속 매출 증가세를 이어가면서 지난해 10조 6205억 원의 매출, 1157억 원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삼성전자의 전장 사업은 지난 2016년 인수한 하만이 중심이다. 인수 금액은 국내 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인 80억 달러(약 9조 6000억 원)에 달했다. 2017년 하만의 영업이익은 600억 원에 불과했지만, 소비자 오디오와 전장 설루션 외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면서 수익성을 높였고, 지난해 매출 14조 2500억 원, 영업이익 1조 3000억 원의 알짜 자회사로 성장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로봇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베어로보틱스에 지분 투자를 한 뒤 최근 지분을 추가로 취득해 자회사 편입을 추진하는 닮은꼴 행보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2족 보행 로봇을 전문으로 개발해 온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대표이사 직속의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했고,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원활한 협력을 위한 시너지협의체도 운영한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동로봇, 양팔로봇, 자율이동로봇 등을 제조·물류 등 업무 자동화에 활용할 계획이다.
LG전자도 지난달 콜옵션을 행사해 미국의 AI 기반 상업용 자율주행 로봇 기업인 베어로보틱스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LG전자는 이를 통해 기존의 가정용·산업용에 더해 전 분야에서 로봇 사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또 베어로보틱스 소프트웨어(SW)를 기반으로 상업용∙산업용∙가정용 로봇을 아우르는 통합 설루션 플랫폼을 구축해 고객 경험을 상향 평준화하고 개발 기간도 단축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올해는 양사가 AI 기반 가정용 로봇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오는 5월 집사 로봇 '볼리'를 출시하고, LG전자는 하반기 이동형 AI 홈 허브 'Q9'을 선보인다. 두 로봇 모두 집안을 돌아다니며 가전을 제어하고, 사용자 지시를 수행하거나 질문에 답변하는 등 생활 편의성을 높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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