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장남 정경선 전무가 입사한지 1년 만인 지난해 연말 대표이사 교체 등 파격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업계는 현대해상의 세대교체가 3세 경영 승계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정 전무는 ESG 경영, 디지털·AI 전환 등에 경험이 많지만 '보험 본업' 경험이 전무하다. 현대해상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고질적인 체질 개선을 통한 수익성 확대인 만큼 정 전무의 '보험 본업' 전문성 확보 여부가 경영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86년생(39세)인 정경선 전무는 아버지 정몽윤 회장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2012년 설립한 비영리단체 루트임팩트는 아버지인 정 회장의 사재 및 현대 관계사 후원으로 운영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정 회장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루트임팩트에 79억 원을 출연했고, 현대해상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50억 원을 출연했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적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체인지 메이커'를 발굴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회사로 체인지 메이커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두고 혁신적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다. 정 전무는 루트임팩트에 근무하며 250억 원 규모의 펀드 조성을 통해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등을 위한 공간인 헤이그라운드를 2016년 성수동에 세웠다.
정몽윤 회장의 신뢰는 현대해상 입사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 전무는 다른 보험사의 3세 오너들과 달리 현대해상에 최연소 임원으로 입사했다. 또 현대해상은 정 전무를 위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미래경쟁력 강화를 위한 부문급 임원 조직인 CSO(최고지속가능 책임자)를 업계 최초로 신설했다.
정 전문는 입사 후 지난 1년간 루트임팩트, HG이니셔티브, 임팩트 투자조합 등 국내외 ESG 분야에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으로 디지털·AI 전환, ESG경영 내재화, 고객 및 이해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 확대를 통한 회사의 브랜드 가치와 위상 제고 등에 나서고 있다. 또 앞으로 현대해상의 시장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을 수립하고, 미래 성장동을 발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 전무는 전문 분야인 현대해상의 디지털·AI 전환, ESG경영 내재화, 브랜드 가치 및 위상 제고 등에서는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현대해상은 정 전무 입사 1년만인 지난해 12월 파격적인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정 전무 산하의 지속가능실 소속 측근 인사들이 모두 임원으로 승진돼 눈길을 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대표이사 교체다. 현대해상은 21일 정기 이사회를 통해 이석현 전무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1969년생인 이 신임 대표는 지난 2020년부터 현대해상을 이끌어 온 1958년생 조용일 대표와 1960년생 이성재 대표 보다 10살 가량 젊다.
업계는 현대해상의 지난해 말 조직개편과 올해 초 대표이사 교체를 두고 경영 승계 가속화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해상이 기존보다 10살 어린 대표를 선임한 것은 3세 경영 가속화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앞서 지난 2023년 오너 3세가 임원으로 선임된 만큼 보다 젊은 리더십을 내세워 조직 내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진행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해상의 3세 경영 승계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 전무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전무한 '보험 본업'에 대한 경험이다. 그리고 현대해상이 해결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실적 개선이다.
한때 현대해상은 삼성화재에 이어 손해보험업계 2위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DB손해보험과 순이익 경쟁에서 밀렸고, 최근에는 메리츠화재에도 순이익 경쟁에 밀려 업계 4위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해 현대해상의 순이익은 1조31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4%나 증가했지만, 손보업계 2위사 DB손해보험(1조7720억 원), 메리츠화재(1조7105억 원)에 비해 크게 뒤처진 상황이다. 그나마 손보업계 2위를 유지해온 총자산 규모도 IFRS17이 도입된 2023년 DB손보에 따라잡히며 손보업계 3위로 밀려났다.
현대해상의 실적 부진은 과거 판매된 1세대 실손보험과 어린이보험의 손실 영향이 크다. 현대해상은 손보업계 실손·어린이보험 점유율 1위사다. 그러나 과잉진료, 의료쇼핑, 보험사기 등 영향으로 과거 대규모 판매한 1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도 크게 높아졌고, 어린이보험도 거수보험료 대비 성장률이 하락한데서 거액의 손실이 발생했다.
1세대와 2세대 초기 실손보험은 소비자가 해지하지 않으면 계약이 연장되는 상품이고, 어린이보험의 경우는 최소 30년에서 길게는 100년까지 보장하는 장기계약이다.
결국, 현대해상이 당분간 이어질 손실에서 반등하기 위해서는 신계약 확대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상품 출시와 판매채널 확보 등의 보험 본업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 전무의 경영 능력 시험대는 현대해상의 본업 경쟁력 강화가 될 것이다"라며 "당분간 현대해상은 발빠른 디지털 전환, 신사업 진출 등과 함께 세대교체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cppark@news1.kr
편집자주 ...한화생명, 교보생명, 현대해상 등 대형 보험사 3세들이 경영 승계 시험대에 올랐다. 입사 12년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은 '큰 그림'인 디지털, 글로벌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보험사 3세 중 가장 먼저 승계 기반을 닦았다. 2023년 12월 현대해상 최연소 임원으로 입사한 정경선 전무는 1년 만인 지난해 말 파격적인 조직개편으로 경영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중하 상무는 교보생명 입사 10년만인 지난해 임원으로 승진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보험사 오너 3세들의 경영 평가와 승계 과제를 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