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최근에는 한국, 일본 시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법인 투자 허용으로 기회가 열렸고, 본격적으로 법인 투자가 활성화됐을 때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홍콩은 이미 그 기회가 가시화된 단계입니다".
'컨센서스 홍콩'이 개최된 18일 행사 현장에서 만난 우덕수 블록데몬 아시아 대표는 올해 한국 시장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앞서 당국은 상장사를 포함해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인 기업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부터 가상자산 투자용 법인 실명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블록데몬은 세계 최대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이다. 자체 보안 기술이 적용된 지갑, 노드(블록체인 네트워크 참여자), 그리고 스테이킹(예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업은 B2B(기업대기업) 중심이다. 블록체인 사업에 도전하려는 고객사가 자체 지갑을 구축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지원하고, 스테이킹 등 블록체인상 기능도 API 형태로 지원하는 식이다.
최근 들어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수가 더 늘고 있지만, 보통 한 가지 인프라만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노드 지원이 중심이거나, 지갑 솔루션 제공이 중심인 경우다. 지갑, 노드, 스테이킹까지 여러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하는 인프라 기업은 블록데몬이 유일하다고 우 대표는 강조했다. 덕분에 JP모건, 씨티뱅크, 골드만삭스 등 기존 전통 금융기관과 협업하기에도 유리했다는 것이다.
우 대표는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큰 금융기관이나 은행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배경을 쌓아온 기업들은 많지 않다"며 "지금까지 B2B 중심으로 사업해온 결과나, 회사 규모, 보안 기술 등 전체적인 역량을 봤을 때 기관을 상대하는 분야에선 블록데몬이 확실한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블록데몬이 지난해 가장 집중한 시장은 홍콩이다. 지난해 홍콩이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하고, 가상자산거래업자(VATP, Virtual Asset Trading Platform) 허가 건수를 늘리면서 가상자산 규제를 크게 완화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10년을 거주한 경험이 있는데다, 아시아 시장 전체를 총괄하는 우 대표도 최근 홍콩의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했다고 했다. 우 대표는 "2023년 홍콩이 규제 완화 기조를 보였을 때는 매트릭스포트, 오케이엑스 같은 중국계 기업들이 다시 홍콩에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면, 2024년 홍콩 ETF가 나오면서부터는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들도 홍콩에 오피스를 세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시장 초창기 홍콩에 거주하던 그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만큼 홍콩과 싱가포르 시장을 비교할 기회도 많았고, 최근에는 싱가포르보다 홍콩이 가상자산에 더 열려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우 대표는 "홍콩은 블록체인을 금융 기술로 간주하고, 가상자산 자체를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고 "예를 들면 투자이민제도에서도 3000만홍콩달러(한화 약 50억원) 정도를 홍콩에 투자하면 이민이 가능한데, 투자금이 가상자산이어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싱가포르는 이렇게까지 열려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런 홍콩의 기조 변화 덕분에 홍콩 기업과의 협업도 늘고 있다고 우 대표는 밝혔다. 또 법인 투자 시장이 활짝 열려 있는 영향도 컸다.
그는 "홍콩은 오히려 개인 투자자들이 일부 가상자산에만 투자할 수밖에 없어서 리테일 시장의 경쟁력은 약한 편"이라며 "대신 법인들이 투자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개인 투자자보다 법인이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넓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환경 덕에 자산운용사들도 가상자산을 이용한 적격투자자용 파생상품을 다양하게 구상 중"이라며 "함께 할 수 있는 회사들이 많다. 대표적인 홍콩 가상자산 기업인 해시키도 고객사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홍콩과 반대다.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는 1000만명에 육박하는데, 법인은 그동안 가상자산에 투자할 수 없었다. 올 하반기가 돼야만 제한적으로나마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을 달리 해석하면 그만큼 기회가 많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블록데몬이 올해 한국 시장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다.
우 대표는 "한국은 법인 투자 허용에 따른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며 "우선 커스터디와 OTC(장외거래) 시장부터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커스터디 기업들이 고객사가 될 수 있다. 또 이미 블록데몬의 고객사인 거래소들도 법인 영업 경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미국 규제당국은 지난달 '가상자산 악법'으로 불리던 'SAB 121'을 폐지했다.
SAB 121은 고객의 가상자산을 대신 보유 중인 금융회사가 해당 자산을 회계 지침상 '부채'로 처리하도록 한 규정이다. 이 규정 때문에 자기자본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은행은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할 수 없었는데, 해당 규정이 폐지되면서 은행이 직접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현재 국내 금융당국이 발표한 법인 투자 허용안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가상자산을 보유할 수 없지만, 향후 규제가 완화되고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현물 ETF가 출시될 경우 국내 은행들도 커스터디 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
우 대표는 "나아가 한국도 미국의 영향을 받아 ETF가 승인되고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들도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할 수 있다"면서 "은행들이 가상자산을 직접 맡느냐, 지분 투자한 커스터디 기업을 통해 맡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블록데몬이 한국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많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