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택시운전사'(장훈 감독)의 미덕은 관객들의 목덜미를 붙잡아 '억지 눈물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는 점이다. 참혹한 사건 자체를 묘사하기 보다는 그 사건 속에서 '인간의 도리'를 다했던 평범한 소시민의 선택을 그려내며 자연스러운 감동을 유도한다.
지난 10일 처음 공개된 '택시운전사'는 서울 택시운전사 김만섭이 광주에서 겪게 된 참혹했던 이틀의 시간을 과장없이 담아냈다. 제목이 말해주듯 주인공은 택시운전사다.
만섭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호강에 겨웠다"고 욕하며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 가장이다. 최루탄 연기에 반사적으로 치약을 꺼내 코 밑에 바르는 그에게 복잡한 정치 상황은 택시 운행을 방해하는 일상의 작은 장애물일 뿐이다. 그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당장 밀린 '사글세'를 갚는 일이다. 돈 걱정이 한가득이던 어느날, 김만섭은 우연히 외국 손님을 싣고 광주에 갔다 오면 10만원을 준다는 이야기가 듣고, 기회를 잡는다.
만섭의 아담한 브리사 택시에 올라 탄 외국 손님은 당시 독일 공영 방송 ARD의 아시아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였다. 극 중 '피터'로 불리는 그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 왔고, 취재를 위해 광주행을 택한다.
광주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보도 통제로 인해 실제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던 만섭은 위험천만해 보이는 광주의 상황에 놀라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군부의 명령으로 전화를 비롯한 모든 통신 수단이 끊겨버린 상황. 만섭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소중한 딸 걱정으로 밤을 지새운다.
하지만 서울에서 내려와 데모를 하는 '열혈' 대학생들로, 또는 '폭도'로 알고 있던 광주 거리의 사람들은, 사실 만섭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민들은 군인들의 총에 맞아 무고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만섭은 양갈래 길에서 갈등한다.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광주에 머무를 것인가, 혹은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칠 것인가.
'택시운전사'는 흔들리는 카메라와 귀를 때리는 총성, 광주 시민들의 순박한 미소를 교차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만섭의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억지로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지만, 누구나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만섭이 섰던 그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만섭과 '피터' 뿐 아니라 당시 무고한 광주 시민의 다채로운 군상을 표현하려고 한 점이 눈에 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생이 됐다는 구재식(류준열 분), 난리 통에도 외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하고 동네 사람들의 일에 앞장서는 인간적인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 분)을 비롯해 부상당한 사람들을 도왔던 택시 기사들과 외국 기자에게 주먹밥을 쥐여주고 가는 이름 모를 소녀까지. 이들의 캐릭터에는 '정치성'이 빠져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사람보다는 무고한 희생자들, 희생자들을 보고 분노하며 저항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국가 권력이 행한 '범죄'와도 다름 없었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선택이다.
다만, 낙관적이고 착하게만 표현되는 시민들에 대한 묘사는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반응은 여러가지일 수 있을 것이나, 영화는 특유의 착하고 따뜻한 톤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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