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한국 경제가 올해 0%대 '초저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국내외 기관들에 의해 우후죽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도 전인 1분기(1~3월) 경제 성장률이 예상보다 더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저성장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내 기업들이 관세 충격에 대비할 역량을 갖췄으며, 오는 2분기에는 민간·정부 소비 증대 등에 따라 성장률 개선 여지가 있다면서 지나친 비관론은 진화하려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그럼에도 주요 기관에서는 연 0%대 성장 전망이 쏟아졌다. 심지어 0%대 후반으로도 보기 어려운 0.5~0.6% 예상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24일 한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는 전기 대비 0.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분기 이후 3분기 만에 나온 마이너스 성장일 뿐 아니라, 분기별 성장률이 4분기 연속으로 0.1% 이하에 머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과거 한국 경제는 대내외 충격에 따라 일시적으로 0.1% 이하 성장세를 보여도, 해당 분기 이후에는 대부분 0.2% 이상 성장률로 반등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이처럼 경제 성장 동력이 충분했던 과거와 달리, 한국 경제가 점진적으로 활력을 잃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분기 GDP 내용을 보면 성장 동력은 주로 내수에서 끊겼다.
특히 건설 부진이 심각했다. 1분기 건설투자는 전기 대비 3.2%, 전년 동기 대비 12.2% 급감했다. 건설투자의 GDP 기여도는 -0.4%포인트(p)에 달해 이번 역성장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물론 민간 소비도 전기 대비 0.1% 감소했고,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0.5%에 그쳤다.
1분기 수출은 전기 대비 1.1% 감소했는데, 이는 철강·알루미늄을 제외하고는 미국 관세가 부과되기 이전의 수출 실적에 해당한다. 이동원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관세보다는 관련 업종의 글로벌 수요 위축이 더 큰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기관들은 한은이 지난 17일 경고했던 '소폭 역성장' 수준을 넘은 1분기 실적에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췄다. 건설 경기 침체, 경제 심리 회복 지연에 따른 소비 위축 등 내부 요인에 더해 2분기부터는 미국발(發) 관세 폭격이라는 외부 악재가 겹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날 JP모건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7%에서 0.5%로, 시티는 0.8%에서 0.6%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직후인 2020년 -0.7% 역성장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성장률이다.
국내 기관도 성장률 전망을 일제히 내렸다. 한화투자증권은 0.5% 내외, NH투자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0.7%의 전망치를 내놨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연 1%대 성장에는 향후 분기마다 전기 대비 평균 0.8% 성장이 필요하지만, 2022년 이후 평균 성장률 0.3%를 고려하면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현실적으로 평균 0.4%의 성장을 가정한 연간 성장률은 0.5% 내외이고, 추경 효과까지 반영하면 조금 더 높아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다만 KB증권(1.3%), 삼성증권(1.1%) 등 여전히 1% 이상 성장을 제시한 기관도 있었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대선 이후 2차 추경이 진행되면서 1분기 저점 이후 느린 회복세 전환을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한은은 2분기(4~6월)부터 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가 일부 회복될 여지를 언급하면서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분위기를 내비쳤다. 이 국장은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기준금리 인하 효과도 점차 나타날 것"이라며 "1분기보다는 소비 심리가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한국 기업들이 관세 충격에 적응할 역량을 갖췄음을 부각했다. 이 총재는 이날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은) 지난 5년 동안 공급망을 다변화했고 특히 중국 의존도를 줄여 왔다"면서 "우리 기업이 경쟁국보다 통상 갈등 이전부터 준비해 온 만큼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경 효과도 성장률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현재 12조 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며, 대선 이후 2차 추경 논의도 잇따르고 있다. 공공 부문 중심의 재정 지출 확대와 SOC 투자는 향후 건설 부진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한은은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영향이 불확실한 점은 한국 경제 성장에 지속해서 하방 압력을 가할 전망이다. 이에 5월 발표 예정인 한은의 수정 경제 전망은 올해 성장 경로를 가늠할 결정적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기준금리 연내 인하 예상 횟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성장률 전망 하향과 1분기 GDP 쇼크로 연내 기준금리 인하 3회(연말 2.00%)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연말 1.75%에 도달하면서 기준금리 1%대 시대가 다시 찾아올 가능성 역시 열어둬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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