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가상자산 '테더(USDT)'를 활용한 외환 거래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정부와 당국이 테더 거래를 규율할 장치는 미비하다. 정부는 아직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외환 거래를 모니터링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고, 향후 본격적인 규제 체계를 준비하는 입법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24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USDT 월간 거래 금액은 11조 3917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1조 7604억 원에 불과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비상계엄에 따른 환율 급등 여파로 두 달 새 6배 급증했다.
월간 USDT 거래 규모를 하루치로 환산하면 3800억 원 상당이 나온다. 이 정도 규모는 작년 4분기 역내 외환 현물환 시장의 일평균 원·달러 거래 규모(103.1억 달러) 대비 3% 수준에 해당한다. 일각에선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소규모 역외 외환 시장 기능을 비공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처럼 통상적인 관리 체계를 벗어난 외환 거래가 자금 세탁, 조세 회피,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작년 말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해 관리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론 법령 내 '가상자산' 개념을 최초 명시해 국내 거래소를 통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실제로 정부가 법 개정 추진을 공식화한 이후 지난해 12월 최은석 의원 등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 내용은 가상자산 정의를 규정하고, 이를 거래하는 국내 거래소가 요건에 맞춰 기획재정부에 등록하도록 한 뒤, 국경 간 거래 내역을 한은에 정기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다만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 여전히 계류돼 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개정법 시행을 목표로 했으나 지난해 말 계엄 선포·해제에 따른 탄핵 정국과 뒤이어 예정된 6·3 조기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이슈에 휩쓸려 시행 시점은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초기 관리 구상은 실효성 논란도 있다. 블록체인 기술 특성상 테더 등은 정부 등록 거래소 외에도 P2P 방식 등 다양한 경로로 거래될 수 있어 국내 거래소를 통한 모니터링만으로는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은 스테이블코인 제도 마련에 한발 앞서가고 있다. 최근 미국은 의회에서 스테이블 코인 법안인 GENIUS(상원), STABLE(하원) 등이 발의된 이후 상임위를 통과했다. EU는 가상자산 규제법안(MICA) 제정으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규제했으며, 일본은 2022년 자금 결제법을 고쳐 법화 준거형 스테이블 코인을 '전자 결제 수단'으로 정의하고 발행·유통 규제를 도입했다.
국내 당국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별도의 규제 체계 마련을 보다 강력하게 주장하는 곳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다. 앞으로 금융위원회 산하 가상자산위원회에서 이뤄질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 논의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한은은 지난 21일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지급 수단 특성을 내재해 이용이 확대될 경우 법정통화 수요를 대체하며 통화 주권을 침해하고 통화정책 유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외부 충격으로 인한 '코인 런'(뱅크 런과 같은 코인 대량 매도 사태) 발생 시 관련 위험이 전통 금융 시장으로 전이돼 금융 안정과 지급결제 시스템 안전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며 "도입·규제 방안 마련 시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에서 활성화되면 아예 원화 거래 없이 경제 활동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스테이블코인 확산 시 발생할 수 있는 주된 위험으로 해당국 통화 대체 현상의 가속화를 꼽았다.
이병목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미국의 경우도 스테이블 코인이 국채 시장에 수요 기반을 제공해 준 측면이 있지만 예기치 못한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한은도 이와 유사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또한 정부 관계자들은 외국환거래법 관리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한다는 방침이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자본 거래나 무역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금융 당국도 해외 입법 사례를 살피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에 가깝다.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글로벌 디지털 화폐 도입 논의는 단순히 '현금의 디지털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가 간 통화 주도권을 둘러싼 국제 지급결제 인프라 재편 작업과 연결되는 거대 사안이라 정책 방향 설정에 있어 최대한 신중을 기하려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 규제·제도화 논의에 나서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국내외 상황을 보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해 시장 발전·양성화를 촉진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데다, 향후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로 우려되는 부작용인 금융 안정 저해, 자본 유출 등을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신상희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이용 기대가 높아지면서 우리나라도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이 늘고 자본 유출, 편법 발행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입법을 위한 의견 수렴·논의 단계나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 조속하고 체계적인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업계는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관리 노력이 규제 혹은 통제 일변도로 흐를 가능성에 대해 경계심을 내비친다. 가상자산에 우호적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확대된 가운데 자칫 정부 규제가 글로벌 시류를 거슬러 시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로 풀이된다.

앞으로 스테이블 코인 관련 논의에서 정부·당국, 특히 법정 통화 유통을 담당하는 한은과의 입장차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은은 금융 안정과 통화 정책 유효성 등을 위해 규제에 보다 무게를 실은 반면, 업계는 제도화를 통한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를 바기대한는 점에서 이견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앞으로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에 따른 자료 제출 요구권을 활용해 특히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 국내외 유출입 현황 등 보다 상세한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라면서 "이로써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내재한 취약성, 금융 시스템 영향 등을 분석해 통화 신용, 지급결제, 금융 안정 업무 수행에 참고할 계획"이라고 했다.
해법은 '규제' 또는 '제도화'라는 시각차를 적절히 조율하는 타협점에서 찾아야한다. 신 연구원은 "제도화로 스테이블코인의 건전한 발행·유통이 보장되면 금융 서비스의 질적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스테이블코인이 일상 금융 거래에 직접 활용될 가능성은 미지수나 금융사는 스테이블코인 기반 서비스의 장점과 더불어 운영, 기술, 보안, 금융 범죄 등의 어려움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icef08@news1.kr
편집자주 ...정부의 외면에도 '달러'처럼 쓰이는 '달러 코인'이 일상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 얘기다. 달러 기축통화국 미국이 용인하면서 테더 이용이 급증하고 있다. 뉴스1은 과거에는 없던 달러 코인 현상을 진단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나아갈 길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