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임용우 기자 = 한국과 미국이 24일 대(對)한국 관세 인하·유예를 위한 '2+2 협의'(재무·통상 수장 회담)를 가질 예정인 가운데, 우리 정부가 '협상(negotiation)'이 아닌 '협의'(consult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측이 주한미군 분담금 조정,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 등을 포괄한 '원스톱 쇼핑' 식의 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통상과 안보 문제를 분리해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셈이다.
이에 이번 협의에서 상호관세와 농산물 비관세 장벽 등을 아우르는 '패키지딜'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6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있어,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세 협상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오는 24일 현지시간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9시) 미국 워싱턴 D.C.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제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2+2 통상 협의'를 진행한다.
정부는 이번 협의가 미국 재무부의 요청으로 성사됐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거론하며 '원스톱 쇼핑' 방식의 타결을 제안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당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 부르며,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의 9배 수준인 100억 달러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16일 협상을 진행한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와 함께 일본 내 미국산 자동차 판매 확대 등 패키지딜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번 일정을 공개하면서 '협상'이 아닌 '협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구체적인 요구 조건을 주고받기보다는, 안건별 의견을 조율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 측이 관심을 가져온 조선 산업, 방위비, 비관세 장벽 등을 아우르는 패키지딜이 이번 회의에서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부는 통상과 안보를 분리해 대응할 방침이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2026∼2030년 적용될 방위비 분담안을 협의한 바 있어, 향후 조정이 이뤄지더라도 폭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방위비는 ‘2+2 통상 협의’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라며 "방위비 분담금은 국회 비준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도 미국 측에 설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6월 3일 대선이 진행되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에서의 협상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도 협의에 그친 이유로 꼽힌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의원은 전날 한미 2+2 통상협의를 두고 "(한덕수 권한대행이) 졸속 협상으로 출마 장사를 하고 있다"며 "본격 협상과 타결은 선출된 새 정부의 몫"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안팎에서도 장기적 국익이 걸린 미국과의 협상에 신중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만남은 미국 측과 서로의 관심사를 주고받으며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라며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주고받는 협상 단계는 아직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협의를 두고 탐색전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5%의 상호관세를 내세운 미국 측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협의라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측이 언급했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등에 대한 정보조차 부족한 만큼, 이번 협의는 탐색전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금은 미국 측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협의에서 양측은 △조선 산업 협력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농산물 비관세 장벽 개선 △유전자변형생물체(LMO) 농산물 수입 등 다양한 의제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안건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바 있는 항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고율 상호관세 발표 당시 쌀·자동차·소고기 등을 한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의 사례로 지목했다.
지난달 4일에는 우리나라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에 대한 제재 동참 요구도 협의 안건으로 거론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이 고율 관세를 통해 중국 기업의 수출 우회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원산지 검증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다양한 통상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8개 부처로 구성된 대규모 실무지원단을 파견했다. 반도체, 자동차, 농산물, 의약품 수입 등 미국 측이 제기할 수 있는 광범위한 현안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상된 의제 외에도 다양한 요구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실무지원단을 대규모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최상목 부총리는 지난 22일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한·미 동맹을 새롭게 다지는 논의의 물꼬를 트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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