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17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2.75%로 유지하면서 환율과 가계대출 추이를 더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1400원대의 높은 환율과 연초 부동산 규제 완화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우려를 비롯해 금융 안정 상황을 우선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국내외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전망의 불확실성이 큰 점이 '경기 부양용' 인하를 미룬 핵심 이유로 제시됐다.
한은은 금통위가 이날 오전 통화정책 방향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금통위는 지난해 10·11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연속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나, 올해 1월에는 고환율을 주된 근거로 동결했다. 이후 지난 2월 경기 부진 대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췄다.
기준금리 인하 이후 경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 차례 숨을 고르는 회기를 둔 셈이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성장 하방 위험이 확대됐지만 미국 관세 정책 변화, 정부 경기 부양책 추진 등에 따른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환율의 높은 변동성과 가계대출 흐름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현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며 대내외 여건 변화를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직전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낮아진 이후 국내외 경기 부진 우려는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미국 정부는 이달 한국(25%), 일본(24%), 유럽연합(20%), 베트남(46%) 등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계획을 밝힌 뒤 90일 동안 유예했고, 중국에는 총 145%의 관세를 매겼다.
이에 금통위는 이날 "올해 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1.5%)를 하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오는 5월 수정 전망에서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금통위는 "무역 협상의 전개 양상, 추경의 시기와 규모 등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경기 침체를 둘러싼 공포가 국내외에서 확산하고 있음에도 현재로선 경기 관련 주요 변수들의 변화를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성에 무게를 둔 셈이다.

금융 안정에 대한 우려도 기준금리 동결의 주된 배경이 됐다.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후 국내 정치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소강됐다. 그럼에도 금융·외환 시장 변동성은 높은 수준으로 지속됐다.
특히 원화 가치 개선이 주요국 통화에 비해 뚜렷이 더딘 상태다. 달러·원 환율은 이달 초 1480원을 돌파한 이후 달러인덱스가 기준치 100을 하회할 정도로 심해진 달러 약세에 상당 수준 내려왔으나, 여전히 14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외환 시장이 비교적 작은 대외 충격에도 민감히 반응하는 변동성 장세를 보이는 점도 기준금리 인하를 어렵게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금통위는 "금융·외환 시장에서 주요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면서 특히 "달러·원 환율이 미국 관세 정책과 중국의 대응, 증권 투자 자금 유출입 등에 영향을 받으면서 단기에 큰 폭으로 상승했다간 반락했다"고 주목했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경계심 또한 기준금리 인하를 발목 잡았다. 올 초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해제·번복 등에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한은은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내비친 바 있다.
금통위는 "서울 지역의 주택 가격 오름세와 거래량이 크게 확대됐다가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이후 둔화됐다"며 "가계대출은 낮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최근 늘어난 주택 거래 영향으로 증가규모가 일시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통위는 앞으로의 정책 방향과 관련해 '금리 인하 기조의 유지'와 '대내외 정책 여건의 변화 주시'를 강조했다. 일단은 경기 부양보다 금리 결정에 있어 신중함을 우선한 상황으로 해석된다.
금통위는 "향후 성장세를 점검하면서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 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구체적으로는 "성장의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나가되, 대내외 정책 여건의 변화와 이에 따른 물가, 가계부채, 환율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시기와 속도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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