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한국 경제가 2년 연속으로 1% 턱걸이 수준의 '초저성장'에 머무를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초 1% 중후반으로 예상됐던 올해·내년 성장률이 미국의 상호관세를 적용할 경우 크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공개한 '4월 아시아 경제 전망'을 보면, 미국의 국가별 상호관세 발효로 인해 중국을 제외한 ADB 회원국(한국 포함)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0.2%포인트(p)·내년 0.8%p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은 전날 한국을 포함한 57개국에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효한 뒤, 반나절만인 이날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해선 일단 90일간 상호관세 유예 입장을 밝힌 상태다. 국가별 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전날 ADB가 발표한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1.5%, 내년 1.9%였다. 미국 관세가 45개 아시아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 눈높이는 올해 1.3%, 내년 1.1%로 낮아진다.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2년 연속 1%대 초반이라는 유례없는 초저성장이 우려되는 셈이다.
과거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대유행 등 대형 위기가 터졌던 시기를 제외하고 경제 성장률이 2%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구체적으로는 △건국 초기인 1956년(0.6%) △석유파동 당시인 1980년(-1.6%) △외환위기가 발발한 1998년(-5.1%)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0.7%) 등이 전부였다.
그러나 2023년 1.4% 성장 이후 지난해 기대보다 낮은 2.0% 성장에 그치면서 저성장 기조가 뚜렷해졌다.
여기에 올해와 내년 각각 1% 초반으로 성장세가 더 꺾일 경우,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에 접어든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연 1% 턱걸이 수준은 2% 내외로 추정되는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을 확연히 밑돈다. 작년 말 한은의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은 2021~2023년 2.1%, 올해부터 내후년까지 3년간 2.0%, 올해부터 2029년까지 5년간 1.8%로 분석됐다.
잠재 성장률은 한 나라가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노동·자본 등 자원을 모두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성장률을 가리킨다. 보통 GDP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보다 낮으면 경제가 제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침체)라고 본다.
게다가 이번 분석은 단순 관세율 인상 효과만을 감안한 것이어서 실제 충격은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무역 갈등 심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및 비관세 무역 장벽 강화 △관세 전쟁 우려 확산에 따른 금융 시장 변동성 확대 △추가적인 무역 분쟁 격화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가 성장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ADB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관세 충격의 추정 효과만을 근거로 성장률 전망을 기계적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정부 정책 대응은 향후 경제 흐름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ADB는 앞으로 각국 정부가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 완화와 재정 확장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성장률 전망은 긍정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통화 완화 정책의 경우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한 국가들에 주로 제안했으며, 재정 정책은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을 주장했다. 적극적 경기 활성화를 위한 폴리시 믹스(policy mix·경제 정책 조합) 도입을 강조한 셈이다.

이어 "각국 정부는 보복 조치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신중히 고려해 보복 여부와 수위를 정해야 한다"면서 "가능한 한 무역 갈등을 완화하고 관세를 줄이는 방향으로 협상이 우선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 관세 충격 완화를 위해 △무역·투자 개방 기조의 유지 △국가 간 경제 협력 강화 △새로운 관세 환경에 적절한 공급망 재편 △역내·외 신규 무역 협정 모색 등을 제언했다.
ADB 분석은 미국이 지난 2일 발표한 상호관세 조치에 더해, 상대국이 미국이 매긴 관세율의 50%에 해당하는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한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GDP의 81%를 차지하는 국가 경제를 반영한 대규모 거시 모형에 미국과 주요 교역국 간 관세 충격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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