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등에 25% 이상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우리나라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동차·반도체는 한국 수출을 끌어가는 '양대 축'으로 관세 현실화 시 수출 중심의 경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상당국은 당장 발효까지 40여 일 남은 미국의 '상호 관세'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對)미 접촉을 넓히며 통상 총력전에 나섰다. 유력한 협상 카드로는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한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 조선업 협력 강화 등이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문제를 제기한 '비관세 장벽 완화'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만한 주제다.

20일 통상 당국과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자동차에 대해 25% 정도의 관세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의약품에도 25% 또는 그보다 높은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 14일 백악관 행정서명식에서 "자동차 관세는 4월 2일쯤 도입될 것"이라고 밝힌 이후 불과 4일 만에 구체적인 '관세 요율'까지 언급하며 강행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시행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4월 2일 발표될 상호관세 정책과 연계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줄곧 한국의 수입 자동차에 대한 엄격한 환경 규제, 부가가치세 문제를 지적해 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발표할 '상호 관세' 부과 기준에 비관세 장벽 요소를 포함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상황이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자동차 관세에서 자유로웠던 우리나라도 규제 사정권에 들게 됐다.
자동차는 우리나라 대미 주요 수출 품목 중 1위(2024년 수출액 비중 27%)를 차지한다. 자동차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 완성차 업계는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에 약 101만 대를 수출했다. KB증권은 관세율이 10%만 적용돼도 현대차·기아 영업이익이 각각 1조 9000억 원, 2조 4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관세율이 20%까지 오를 경우 영업이익이 최대 19%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산업연구원은 관세 현실화 시 한국 자동차 수출 타격이 최소 6%에서 최대 14%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수출 규모로 환산하면 2조 6000억~5조 9000억 원에 이른다.
해외투자은행(IB) 씨티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 부품, 의약품, 반도체 등에 25%의 관세를 물릴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0.20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산 제품에 10.79%의 상호 관세를 매기면 GDP는 0.206%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관세 규제에 따른 업계 피해가 적지 않은 만큼, 미국이 요구하는 비관세 규제 완화와 투자 확대 등을 협상카드로 내세워 적극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미국과의 협상에서)미국이 이전부터 문제로 삼고, 언급했던 분야가 있다면 전략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우리가 선제적으로 미국이 요구하려는 문제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한 뒤 협상테이블에 올려놓는다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24개 국내 비관세 장벽 사안에 대해 규제 개선 필요성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통상당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이번 관세 전쟁의 명분으로 내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역수지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현실 가능한 대안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가 거론된다. 일본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전부터 미국산 LNG를 대거 수입해 대미 무역흑자 폭을 낮추는 방식으로, 소위 '대미 무역 흑자국' 이미지를 지워가고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다시 개발 드라이브가 걸린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 의사를 밝히며 눈도장을 찍었다.
주 정부가 주도하는 이 사업은 북극해 연안 알래스카 북단 프루도베이 가스전에서 난 천연가스를 송유관을 거쳐 앵커리지 인근 부동항인 니키스키까지 날라 액화한 뒤 수요지로 나르는 프로젝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열린 미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일 양국 기업의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투자 계획 등 미국산 LNG 수출 확대를 대대적인 성과로 홍보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 중이다.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3위 국가다. 지난해 LNG 수입액만 360억 달러(약 50조 원)에 달한다. 미국, 호주, 카타르 등 주요 가스 수출국에는 VIP 고객인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추가적인 경제 부담 없이 LNG와 원유 등 에너지 도입선을 미국으로 일부 돌리는 것만으로, 대미 무역수지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후인 2017~2021년 당시에도 미국산 원유·가스 도입 비중을 상당 수준 늘려 미국의 환심을 얻어낸 바 있다.

또 다른 협상카드는 'K-조선업'의 월등한 경쟁력을 내세운 협력 강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유지·보수·정비(MRO)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협력'을 강조한 만큼 양국의 조선산업 협력을 지렛대 삼아 이번 관세 전쟁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때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을 자랑한 미국이지만, '존스법' 등의 규제로 인해 현재는 시장 경쟁력을 상실, 해양 패권을 중국에 내줄 처지에 놓였다.
이에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조선업'을 꼽고, 역량 강화에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 및 항만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미국 내 선박 건조를 장려하고, 중국 선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향후 10년 안에 미국 내에서 만든 선박을 기존 80척에서 250척으로 늘려 '전략상선'을 운용한다. 현재 국제무역에 쓰이는 중국 선박이 5500여 척에 달하는 만큼 그 격차를 빠른 시일 내 좁혀간다는 취지다.
동맹국과의 협력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방장관이나 교통장관 등의 주도로 동맹국과의 조선업 교류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미국 조선소에 투자하면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조선업 강국인 우리나라가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 선박의 28%를 건조해 중국(51%)에 이은 세계 2위였다.
조선업 역량 강화에 급한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 우리나라의 높은 경쟁력은 충분한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은 보호 장벽을 쌓은 다른 산업과 달리 우방국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라며 "K-조선은 미국이 원하는 역량과 우방국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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