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서민경제가 위태롭다. 경기 둔화로 인한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9년6개월 사이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 수는 100만 명에 육박한다. 관련 통계작성 이래 최대 규모다.
근로자 실질임금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에서 경영주나 근로자 모두 팍팍한 살림살이에 한숨만 짙어지고 있다. 두 달 뒤쯤 본격화할 '2026년도 최저임금' 논의는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27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등에 따르면 최임위는 올해도 어김없이 '2026년도 최저임금'을 논의하기 위해 필요한 전원회의 구성, 회의 일정 조율 등의 사전 작업을 시작한다.
최임위는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사회적 대화기구다.
고용부 장관이 매년 3월31일까지 심의를 요청하면 위원회는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6월말)에 심의를 종료해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 회의는 '인상' 여부를 둘러싼 노사 간 공방이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 둔화로 서민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주(경영계)나 근로자(노동계) 모두 한 치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실제로 서민경제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이 역대 최대 규모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융기관 대출로 버텨온 자영업자의 상환 부담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관측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영업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64조4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2012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다. 2분기 말(1060조1000억 원)과 비교해도 불과 석달 만에 4조3000억 원이 늘었다.
자영업자의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도 3분기 말 총 18조1000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2조2000억 원 늘면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3분기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연체율은 1.70%로, 2분기(1.50%)보다 0.20%p 높아졌다. 1.70%는 2015년 1분기(2.05%) 이후 9년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는 통계는 또 있다.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 수가 100만 명에 육박해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최근 폐업사업자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사업자 수는 98만6000명으로,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가장 많았다.
최근 5년간 폐업 사업자 수 추이를 보면 2019년 92만2000명에서 2020년 89만5000만명, 2021년 88만5000만명, 2022년 86만7000만명으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12만명가량이 급증하면서 폐업 사업자 수가 크게 늘었다. 폐업률로 살펴봤을 때, 2016년(11.7%)부터 2022년(8.2%)까지 꾸준히 감소하다가 지난해 9.0%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상승했다. 7년 만의 상승 반전이다.
근로자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이다. 고용부가 발표한 지난해 12월 사업체 노동력조사를 보면, 지난해 1~11월 실질임금은 월 353만 3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올랐다. 명목임금이 403만1000원(2.8%) 증가하는 동안 전년동기 대비 물가 상승률은 2.4% 오르는데 그치면서, 그나마 2년 만에 플러스(+) 전환할 수 있었다.
노사 모두 최저임금 협상에 쉽게 양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때문에 올해는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대한 갈등도 더 고조될 전망이다.
최저임금은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이뤄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합의제 방식으로 매년 결정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37년 이래로 노사 간 합의에 따라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7차례 뿐이다.
최저임금액은 그동안 명확한 근거 없이 노사가 '흥정하듯' 졸속으로 결정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사는 매년 논의 때마다 소모적 갈등을 유발하며 부딪쳤고, 법정시한을 넘기고 나서야 결국 공익위원들의 표결에 의해 결정하는 구조로 굳어져 왔다.

지난해 결정된 2025년 최저임금도 결국은 캐스팅보트인 공익위원들의 손에 의해 결정됐다. 최저임금 산출 방식은 또다시 전례 없는 산식에 의해 바뀌었다. 명확한 기준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됐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최저임금위원회 내부에서조차 시스템에 한계를 느낀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통상 노사 간 격차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공익위원들은 '심의 촉진 구간'을 제시하고, 이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문제는 노사 중재를 위해 제시된 '심의 촉진 구간' 설정 기준이 객관적 기준 또는 산식 없이 매년 달라진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최소한 생계를 보장할 최저임금 결정이 표결로 흥정하듯 정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 같은 비판을 수용해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에 착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를 위한 제도개선 위원회도 발족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정국까지 이어지는 동안 관련 논의는 멈춰선 상태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치상황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일정부분 걷혔고, 새해가 시작된 만큼 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도 본격화할 것"이라며 "최종 논의나 개선방안 발표 등은 연구회의 주도 아래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최저임금은 지난해(9860원)보다 1.7%(170원) 오른 시간당 1만30원으로, 월 급여(209시간 기준)로는 209만 627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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