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윤석열 대통령 체포 이후 해외에서 평가하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낮아졌으리라는 기대감이 부상했으나, 지난달만 5조 원 넘게 증시를 이탈한 외국인 자금의 조속한 복귀는 아직 미지수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한미 경기 차별화(디커플링)와 강달러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돼 외국인 투심 약화와 1400원대 고환율은 쉽사리 해소되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국내 경기 회복 기대가 확산하는 경우, 한미 경기 온도 차가 줄고 오히려 외국인이 국내 증시로 복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6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의 국내 증권(주식+채권) 투자 자금은 38억 6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순유출은 시장에 들어온 돈보다 빠져나간 돈이 많음을 뜻한다.
지난달 평균 환율(약 1434원)로 환산하면 한 달간 외국인 증권 자금이 5조 6000억 원에 증발한 셈이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에 금융 시장 충격이 심각했던 2020년 3월(-73.7억 달러) 이후 약 5년 만에 최대 순유출에 해당했다.
외국인 자금 이탈은 주식과 채권 양방향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주식 자금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순유출 행진을 시작했기에 충격이 덜했으나, 채권 자금의 경우 9개월 만에 순유출로 돌아선 터라 특히 의미심장하게 해석됐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초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국내 정치 불안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경계심을 키운 가운데, 미국 내 경기 호조로 연방준비제도(연준) 금리 인하가 늦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겹치면서 외국인의 증시 탈출이 지속됐다고 입을 모았다.
즉, 최근 외국인 자금 이탈은 국내 정치 불안도 한몫했으나, 미국이 예상을 뛰어넘는 경기 호조(경기 + 물가 상방 압력)를 보이면서 경기 우려가 고조된 한국(경기 + 물가 하방 압력)과 격차를 벌린 점도 크게 작용한 상황으로 풀이된다.
정형주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 시계에서 비상계엄 사태 충격만 작용했다면 최근 환율 수준은 관리 대상이나, 지난달 연준의 매파(통화 긴축 선호) 기조 강화는 미국 외 국가들의 공통된 통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원은 "외환 시장에 대한 당국 기조는 단기 불안(금융 안정)보다 중장기 한국경제의 구조적 성장 문제와 연계할 가능성이 높다(중장기 자본 유출)"고 평가했다.
실제로 전날 윤 대통령 체포가 큰 충돌 없이 이뤄지면서 일각에선 해외의 국내 증시 경계감이 누그러졌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실제 시장 영향은 크지 않았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무력 충돌 없이 체포했으나 주가·환율은 큰 반응 없이 횡보했다"면서 미국 내 물가 불안이 국내 정치 불안 완화를 발목 잡은 격이라고 주목했다.
한미 디커플링 수준이 비슷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 불안이 약간 완화하는 정도로는, 얼어붙은 외국인 투심을 녹이기 역부족이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외국인들은 환차익까지 고려하기에 추세적 환율 하락에 대한 신뢰가 없는 현재로서는 외국인 투심 회복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국민연금 환 헤지가 추가 자금 유출을 방어 중이며, 15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에 부합해 외국인 심리가 더 냉각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진 않았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증시 복귀의 관건으로 한미 경제 간극의 축소를 꼽았다.
한미 경기 온도 차를 줄이는 대표적 방법으로는 재정 확장과 금리 인하가 지목됐다. 이 중 금리 인하의 경우, 한은의 선제적 금리 인하가 한미 금리 역전을 키워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통념과 달리, 오히려 외국인들을 국내 증시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분석에 해당해 이목을 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라진 외국인 국고채 투자 흐름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에도 외환 변동성은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추가 통화 완화 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안 연구원은 "이제 내외 금리차 관리보다 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 기타 수급 요인 대응이 외환 시장 안정 도모에 더 효과적"이라면서 "과거보다 내외 금리차 우려를 낮게 보고 통화 정책 운용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고, 지금의 통화 완화는 외국인 자본 유출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순유입을 견인할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