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두렵다" 전쟁터 누빈 평화의 사도…韓 가톨릭에 "영웅" 칭찬

[교황을 기리며] 추규호 전 주교황청대사 특별 기고
방북 초청장 오지 않자 "초청장 멀리서 걸어오는 중" 유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주켓토'(교황이 쓰는 모자)에 축복의 인사를 적어 추규호 전 교황청 대사에게 선물하는 모습.(추규호 전 대사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주켓토'(교황이 쓰는 모자)에 축복의 인사를 적어 추규호 전 교황청 대사에게 선물하는 모습.(추규호 전 대사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일 로마의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미사에 나와 온 힘을 다해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을 축하합니다(Buona Pasqua!)"라고 축복한 후 다음 날 아침 선종했다. 목자(牧者)로서 그의 생애는 '마음이 가난한 삶'에 철저했으며 약자들의 대변인이었다.

교황은 즉위한 다음 해인 2014년에 아시아 국가 중 첫 단독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했으며, 서울에서 124위 시복식을 거행하고 아시아 청년대회를 찾아 다양한 이들을 격려해 줬다.

필자는 지난 2020년 12월 17일 주교황청대사로서 교황께 신임장을 제정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교황의 푸른 눈은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눈처럼 맑고 투명했으며, 나는 그가 한국 교회와 한국민을 각별히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황은 한국 가톨릭 교회가 조선조 초기교회 시대에 목자(신부) 없이 자생적으로 신앙공동체를 일구고,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것은 교회사에서 이례적이며 영웅적인 일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한편 교황은 한반도 전쟁과 분단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그 고통이 해소되도록 항상 기도한다고 했다.

필자가 외교관 생활에서 은퇴한 후 주교황청대사로 다시 가게 된 것은 교황의 방북 가능성을 대비하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고 본다. 국내 일각에서는 그의 방북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것이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존재했다. 그러나 교황과의 대화에서 그가 인간의 고통이 심한 곳, 평화가 파괴되었거나 위험에 처해 있는 곳은 목자로서 언제든지 찾아가고자 하는 '평화의 사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문 이미지 - 신임장 제정식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 추규호 전 대사.(추규호 전 대사 제공)
신임장 제정식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 추규호 전 대사.(추규호 전 대사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럽의 전통 가톨릭 국가가 아닌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을 우선 방문해 전임자들과는 다른 면을 보였다. 파푸아 뉴기니, 쿠바, 미얀마 같은 나라를 종교나 정치체제를 가리지 않고 방문했으며, 미얀마, 몽골, 북마케도니아,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바레인, 남수단 등은 역대 교황 중 처음 방문한 것이다.

2021년 3월 교황의 이라크 방문은 2000년 교황청 역사상 처음 이루어진 것인데, 무슬림 국가인 이라크의 정세 불안으로 인한 안전문제로 내부 반대가 많았다. 필자는 방문 발표 직후 면담을 하게 되어 어떻게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교황은 "나도 두려워요"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나는 연이어 전쟁터가 된 이라크의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교황은 이 방문에서 무슬림과 종교 간 대화는 물론 각종 종교 안에서의 종파 간 대화도 이끌었다. 이 방문 이후 이라크 측에서는 매년 3월에 교황의 역사적인 방문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교황은 2018년에 발표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라는 권고문에서 크리스천은 "성령 안에서 기쁘게" 살아야 하며, 그 기쁨은 보통 '유머 감각'을 동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씀은 유머가 풍부하며 이는 상대를 매우 편하게 이끌어 소통하는 마력이 있다. 필자와의 첫 면담에서 교황은 북한 측이 방북 초청장을 보내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 "그 초청장은 아직도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모양"이라며 필자에게 편하게 말씀해 주었다. 그는 또한 사제와 수녀들이 너무 근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경계하면서 "고약한 노총각과 고약한 노처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하곤 하였다.

필자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장례미사 전날인 2023년 1월 4일 교황의 바쁜 일정 속에서 이임 인사를 하며 두 가지 선물을 받게 되었다. 교황이 2014년 방한 때 서울교구, 대전교구를 방문한 것을 상기하고 그때 방문하지 못한 교구에 대한 선물로 '주켓토'(교황이 쓰는 둥근 흰 모자)에 축복의 말씀을 써 달라고 청하였더니 즉석에서 써 주셨다. 또 하나는 한국 교회가 2027년 세계청년대회 개최를 희망하는 데 이를 도와 달라고 조르다시피 여러 차례 청한 것에 대해,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며 잘 기억해 놓겠다고 하고 나서, "내 곁에는 '라자로'(유흥식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가 있지요"하고 웃으며 말해 주었다. 그는 그해 8월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직접 한국 선정을 발표해 주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감을 준 채 하늘나라 '아버지의 집'으로 갔다. 그러나 재위 기간 중 그의 말씀과 사목의 행적은 오랜 기간 동안 세계인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속에 신앙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2027년 세계 청년대회를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인 한국 교회는 새롭게 선출되는 교황의 사목 방문을 기대하면서, 하늘나라 '아버지의 집'에 계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끊임없이 축복을 보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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